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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이유 낙태 합법화 명분 될 수 있을까

등록 2019.02.15 15: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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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30개국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허용'

사회·경제적 사유 구체적 범위가 핵샘 쟁점

한국·뉴질랜드·폴란드·칠레·이스라엘 등 '불법'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로 낙태금지 폐지 결정

여성들, 사회생활·경제적 우려 등에 낙태 고려

쟁점은 사회·경제적 이유 범위…종교계 '반대'

복지부, 헌재 '낙태죄' 위헌 결과 나오면 논의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 변론일인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5.24.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 변론일인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5.24.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임재희 기자 = 세계적으로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인공임신중절(낙태) 허용 추세를 보인 가운데 극히 예외적으로만 낙태를 허용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 실태조사 결과 상당수 여성들이 사회생활 지장 우려나 경제적 어려움 등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유로 낙태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높여줄 수 없다면 허용 범위 확대로 여성 건강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보건복지부 의뢰로 진행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30개국이 경제적 또는 사회적 사유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었다.

현재 이를 금지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아일랜드, 뉴질랜드, 폴란드, 칠레, 이스라엘 등 6개국이다. 이 가운데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국민투표로 낙태 금지를 규정한 헌법 규정 폐지가 결정된 상태다. 현재 임신 12주 이내 수술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 특정 사유에 대해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크게 5가지 경우에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본인·배우자가 우생학·유전학적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인척간 임신,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이다.

낙태를 형법상 죄로 규정한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고 있는 셈인데 현실은 달랐다.

지난해 9~10월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실태조사에서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 756명(성경험 여성의 10.3%, 임신경험 여성의 19.9%) 상당수도 사회·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임신중절을 하게 된 이유(복수응답)로 10명 중 3명가량이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33.4%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 32.9%, '자녀계획 때문에(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조절 등)' 31.2% 등을 꼽았다.

10대와 20대 초반에선 사회활동 때문에 임신중절을 했다는 응답률이 19세 이하 55.9%, 20~24세 52.7% 등 50%를 웃돌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20~24세(37.6%), 25~29세(35.3%), 35~39세(37.2%)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인공임신중절을 하지 않았으나 임신 기간을 고려한 경우에도 경제적 이유 46.9%, 자녀계획 44.0%, 사회활동 지장 우려 42.0% 등으로 조사됐다.

이런 실태로 인공임신중절 사유에 경제·사회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모자보건법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2004년 11월부터 2005년 9월까지 고려대의 '전국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종합대책 마련'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임신 유지나 출산 후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시술의사를 포함해 1명 이상 의사 확인서를 통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08년에는 연구를 토대로 법 개정을 논의하면서 허용 사유에 '사회적 적응 사유로 산모가 요청하는 경우'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쟁점은 어디까지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할 것인지다.

여성계는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허용 여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를 위해선 인공임신중절을 범죄시하기보다 사회적 지지와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측은 "인공임신중절이 발생하는 실질적인 근간에는 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적인 조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신중지 합법화와 함께 의료접근성 및 정보접근성 확대, 건강보험 적용 사회경제적 여건 보장, 성차별 완화 정책 확대, 사회적 낙인 제거 등 노력을 다각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까닭에 종교계에서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 허용을 사실상 낙태죄 폐지 주장으로 받아들인다.

2008년 복지부 공청회 당시 이동익 가톨릭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적응 사유'는 산모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낙태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결국 낙태죄가 사문화될 것이며 낙태 자유화로 이어질 것임은 뻔한 이치"라고 했다.
【세종=뉴시스】OECD 회원국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 등 현황. (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OECD 회원국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 등 현황. (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email protected]

이런 가운데 공청회 당시 학계에선 양육의 희망이나 기대가 절망적인 상태라는 기준에 따라 미혼 미성년자 여성과 여성의 가족이 경제적으로 양육이 불가능한 경우를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로 구분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로 미성년자와 양육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제상태 등이 제시됐다.

문항별로 보면 미성년자인 경우 10명 중 7명(71.3%)이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허용하자'는 의견이었고 21.5%는 '임신 주수를 고려해 허용' 입장이었다. '허용 불가'는 3.1%였으며 4.1%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경제적 이유에 대해선 45.0%가 '임신 주수를 고려해 허용'이라고 했고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허용'이라고 한 사람은 42.1%였다. 5.3%는 '허용 불가' 입장을 보였고 '잘 모르겠다'는 답변률은 7.3%였다.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두 경우 모두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적극적으로 허용 의견을 낸 미성년자의 경우와 달리, 경제적 이유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는 이르면 4월부터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낙태를 죄로 규정한 형법의 위헌 여부 판단이 선행돼야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인데, 헌재는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리를 4월11일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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