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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상한 백화점 피라미드에 근로자는 없다"

등록 2019.02.17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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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매입 없는 백화점, 대부분 간접고용

입점 의류브랜드 매장, 직원 아닌 개인사업자

노동법 사각지대, 본사 요구 계약 조건 거절 힘들어

【서울=뉴시스】4일 인천 미추홀구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이 오픈한 가운데 방문 고객들로 매장이 붐비고 있다. 인천터미널점은 지하2층부터 6층까지 부지면적 29,223㎡(8,840평), 연면적 136,955㎡(41,429평), 영업면적 51,867㎡(15,690평), 주차대수 1,600대으로 구성돼 있다. 2019.01.04. (사진=롯데백화점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4일 인천 미추홀구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이 오픈한 가운데 방문 고객들로 매장이 붐비고 있다. 인천터미널점은 지하2층부터 6층까지 부지면적 29,223㎡(8,840평), 연면적 136,955㎡(41,429평), 영업면적 51,867㎡(15,690평), 주차대수 1,600대으로 구성돼 있다. 2019.01.04. (사진=롯데백화점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주말을 맞아 백화점에서 봄 옷을 한 벌 구입한 당신. 오늘 당신을 응대하고 판매를 진행한 이는 백화점 직원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그렇다면 해당 패션 브랜드의 직원일까? 이것의 정답도 '아니오'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브랜드에서는 매니저라도 개인사업자, 혹은 위탁판매사업자의 지위를 가진다.

최근 르까프, 머렐, 케이스위스를 보유하고 있는 중견업체 화승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개인사업자 신분인 백화점 브랜드 매니저가 본사 대신 부도난 어음을 갚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판매수수료를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줬다는 것을 특이한 지점으로 봤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브랜드 매니저들이 개인사업자라는 점 자체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일하는 사람이 2000명 가량 되는 대형 백화점 점포에서 백화점 직원은 불과 150명 남짓이다. 10%도 안 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백화점은 직매입의 비중이 크지 않고 자릿세를 받는 특정매입 방식으로 영업을 한다. 그러다보니 각 브랜드가 물건 매입과 판매, 직원 고용을 다 하는 구조다.

백화점 뿐 아니라 면세점이나 대형마트 등도 마찬가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쓴 보고서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 및 건강실태와 개선방향'에 따르면 국내 유통업체의 고용 구조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입점점협력업체 직원, 개인사업자 형태 전문판매 직원 등이 적게는 75%, 많게는 85%로 정규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유통업체가 고용을 하지 않는다면 공은 브랜드 업체로 넘어간다. 명품 브랜드 등 직영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라면 직원을 근로자로 고용해 4대보험, 퇴직금 지급 등의 의무를 진다. 업계에서는 직영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를 전체의 3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나머지 70%다. 이들 브랜드의 '매니저'라고 불리는 중간관리자들은 본사의 꼼꼼한 면접을 통해 채용이 되고 직영브랜드 매니저와 별 다를 것 없이 본사에 매출과 근태 등을 보고하는 등의 업무를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개인사업자다.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일종의 사각지대다.

물론 이 같은 관행이 굳어진 것은 개인사업자로 계약해야 판매 역량에 따라 큰 수익을 가져갈 수 있어서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개인사업자인 브랜드 매니저들은 대리점주와는 달리 상품을 직매입하지 않고 회사 보유분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수수료를 받는다"며 "인기가 좋은 브랜드는 매니저가 직원을 여러 명 채용하고 수수료도 많이 받아 수익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본사 소속 관계자는 "판매한 만큼 수수료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매니저들도 직원으로 채용되는것 보다는 개인사업자가 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본사의 경영상태가 좋고 수수료 지급 방식을 합리적으로 운영한다면 사정이 나쁘지 않지만 화승처럼 '수수료를 어음으로 지급할테니 하기 싫으면 말아라' 식으로 나오면 문제가 생긴다.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본사가 갑질을 하려고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있다는 전언이다. 면접을 통한 매니저 선발권을 가지고 있는 본사의 요구 조건을 거절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수 년을 근무하는 것은 매니저가 되면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백화점 판매직원이라면 누구나 매니저가 되려는 꿈이 있기 때문에 면접장에서 회사의 제시 조건을 대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이유로 면접장에서 수수료를 어음으로 지급해도 계약을 하겠느냐는 조건에 사인을 했던 화승의 3개 브랜드 매니저들은 부도난 어음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회사가 진 빚을 본인의 개인대출로 전환해 갚아야 하는 두 개의 선택지 앞에 놓여 있다. 열심히 일해서 받은 것이 노동의 대가가 아닌 빚으로 돌아온 것이다.

회사 빚을 떠안은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회사에 임금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회사는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까지는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 외에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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