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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이스라엘, 또 '폴란드의 반유대성' 놓고 외교갈등

등록 2019.02.18 22:42:27수정 2019.02.18 22: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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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비엥침=AP/뉴시스】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지 폴란드 남부 크라크프의 오스비엥침에 세웠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가 27일 소련 적군에 의한 해방 74주기를 맞아 생존자 등이 기념식을 위해 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다. 1945년 1월27일 해방 때까지 여기서 2년 동안 110만 명의 유대인, 폴란드 및 집시 들이 가스 처형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2019. 1. 27.

【오스비엥침=AP/뉴시스】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지 폴란드 남부 크라크프의 오스비엥침에 세웠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가 27일 소련 적군에 의한 해방 74주기를 맞아 생존자 등이 기념식을 위해 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다. 1945년 1월27일 해방 때까지 여기서 2년 동안 110만 명의 유대인, 폴란드 및 집시 들이 가스 처형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2019. 1. 27.

【서울=뉴시스】 김재영 기자 = 나치에 점령당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강제수용소가 세워졌던 폴란드와 이스라엘 사이에 또다시 '폴란드의 반유대 성향과 역사'를 놓고 심각한 외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18일 폴란드의 마테우스 모라비에스키 총리는 이날부터 이틀동안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포함 동유럽 비제그라드 4개국과 이스라엘 간 정상회의의 대표단 참가를 전격 취소시켰다.

본래 총리 자신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스라엘 총리의 '반 폴란드' 발언을 문제 삼아 17일 외무장관을 대신 보낸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17일 늦게 다시 이스라엘에서 반 폴란드 발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

문제의 시발점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반 폴란드 발언은 14일 다름아닌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행해졌다. 미국과 폴란드가 60여 개국 외무장관을 모아놓고 중동 평화안보 국제회의를 바르샤바에서 열었다. 이 회의는 이란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이란을 가장 위험한 적으로 경계하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쌍수로 환영할 모임이었다. 그런데 네타냐후 총리는 타깃 이란을 공격하던 중 '엉뚱하게' 폴란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말았다.

네타냐후는 당시 연설에서 "폴란드인들이 나치와 협력했다"고 대놓고 말했다.

나치 독일과 폴란드가 연결되는 것을 폴란드 사람들은 아주 싫어한다. 특히 3년전 집권한 민족주의 우파 법과정의당은 이 연결을 형사 처벌로 차단하고자 한 바 있다. 네타냐후 발언에 폴란드가 분노했다.

즉각 이스라엘은 총리의 발언이 잘못 인용되었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총리가 말한 것은 '일부 폴란드인(Poles)'인데 폴란드인 전체, 폴란드 민족(The Poles)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폴란드 정부는 15일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가 분이 안 풀려 17일 총리의 정상회의 불참을 발표했다.

그런데 17일 저녁, 몇 시간 전에 네타냐후 총리가 4년 동안 겸직했던 외무장관을 양도하고 그 대행으로 임명한 이스라엘 카츠 정보, 교통 장관이 라디오 방송에서 다시 불을 질렀다. "나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아들이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적당히 타협하거나 살짝 훼손되어도 좋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홀로코스트는 분명하다. 우리는 망각해서도 안 되고 우리는 용서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카츠 대행은 무엇이 벌어졌는가의 역사적 진실을 바꿀 수 없다고 한 뒤, 평소의 논리적 순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폴란드인들은(Poles) 나치와 협력했다. 명확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폴란드인에게 부모가 살해당한 샤미르 전 수상이 말했듯이 '그들은 어머니의 젖처럼 반유대주의를 빨고 자랐다'"고 성토했다.

이 말에 폴란드 총리가 예루살렘 정상회의의 폴란드 참가를 취소했다.

폴란드는 1939년 나치 독일에 제일 먼저 점령 당했으나 1년 뒤의 프랑스와 달리 친나치 정권은 세워지지 않았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었던 폴란드였고 나치가 유대인들을 이잡듯 뒤져 한데모아 대학살에 나서자 많은 폴란드인들이 유대인들을 구해줬다.

그뿐 아니라 나치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일 때 300만 명의 폴란드인들이 같이 몰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홀로코스트 현장인 강제수용소 중 아우슈비츠 등 여러 곳이 나치에 의해 점령지 폴란드 남부에 세워진 역사가 어느새 폴란드가 나치 홀로코스트의 앞잡이로 인식되는 연결고리가 되고 말았다.

이 연결고리에 걸려, 폴란드의 예민함을 모를 리 없는 이츠하크 샤미르 전 총리는 물론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폴란드의 '반 유대성'을 토로해서 외교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수용소 위치가 아니라 현대판 '구약'처럼 유대인 사이에 전해지는 '나쁜 폴란드인들'에 관한 이야기와 기억에서 해방되기 어려운 탓이다.

나치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을 도와준 폴란드인 못지않게 유대인 은신처를 나치에 일러바치고, 기회다 싶게 이웃이었던 유대인들을 죽이거나, 재산을 독차지한 폴란드인들이 많았다.

이 같은 나쁜 폴란드인들에 대한 기억을 유대인들은 지워내기 어렵다고, 네타냐후 총리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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