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동우, 사진에 담은 독립운동 영웅사···각국 100곳 기록
인도·중국·멕시코·쿠바·미국·네덜란드·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역사박물관·류가헌·춘천 상상마당 전시 및 사진집
독립운동가 황기환(?~1923)의 미국 뉴욕 묘소. 황기환은 뉴욕의 병원에서 마흔살쯤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유족이 없는 그의 장례는 지인들이 치렀다.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서 황기환의 묘가 발견된 건 그가 죽은 지 85년만인 2008년이다. 비석에는 ‘대한인 황긔환지묘 민국오년사월십팔일영면’이라고 적혀 있다. ⓒ김동우
백범(白凡) 김구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을 당시, 일제 순사가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고 고문하면서 자백을 강요할 때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고 다짐했다.
‘백범일지’에서 등장하는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김구는 왜놈들이 자신을 뭉우리돌이라고 불렀고, 자신같은 독립투사를 뭉우리돌이라고도 표현했다고 백범일지에 썼다.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사진가 김동우(40)가 중국에서부터 중앙아메리카까지,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에서 이런 ‘뭉우리돌’들의 흔적과 그 후손 등을 기록한 사진들을 내놓는다.
김동우 작가는 인도-중국-멕시코-쿠바-미국-네덜란드-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총 9개국 100여곳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일주하며 기록했다. 1년8개월이 걸렸다. 2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을 통해 70여점의 사진과 영상, 26일부터 갤러리 류가헌에서 ‘뭉우리돌을 찾아서-세계에 남겨진 우리 독립운동의 흔적’ 25점을 선보인다. 또 동명의 사진집(아카이브류가헌, 280쪽, 3만8000원)도 출간한다. 28일부터는 춘천 상상마당에서도 전시한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단지동맹 기념비. '1909년 2월7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결사 동지 김기용·백규삼·황병길·조응순·강순기·강창두·정원주·박봉석·유치홍·김백춘·김천화 등 12인은 이곳 크라스키노(연추 하리) 마을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하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기 왼손 무명지를 잘라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 만세를 삼창하다'고 새겨있다. ⓒ김동우
“제가 원래 사진을 잘 찍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여행하면서 알았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가 강재훈, 이재갑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하게 되면서 제대로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2017년 2월 EBS 세계테마기행 출연차 모리셔스에 있을 때,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PD에게 전해듣고 놀란다.
“홍범도 장군은 김좌진 장군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이잖아요.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그런 분들이 왜 그런 곳에서 돌아 가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한마디로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무지했던 거죠.”
애니깽 농장. 1905년 4월4일 1033명이 제물포에서 멕시코 이민 배에 올랐다.이들은 4년 단기 노동 계약을 맺고 태평양을 건넌다. 하지만 역사는 이 이민을 한 차례로 끝난 불법 이민 사례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의 야스체 농장은 악질 농장주 때문에 한인들이 고초를 겪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 꽃'의 배경이기도 하다. ⓒ김동우
“제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 먼 인도가 우리 독립운동과 상관있을까 했어요. 그런데 뉴델리 레드포트가 우리 광복군이 영국군과 함께 훈련하던 장소였던 거죠. 탁하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자료를 더 찾아보니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는 잘 정리가 돼 있었는데,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는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자료가 있어도 국내 자료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졌고요. 어떤 작가도 이 작업을 하나로 엮어 낸 적이 없는 거예요. 내가 할 일이 이거다 싶었죠.”
그때부터 전 세계에 어떤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는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을 제외하면 전 지구적으로 우리의 보석 같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흩어져 있었어요. 이민의 역사가 독립운동의 역사로 발전된 곳도 많았고요. 나라를 떠났는데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버린 거죠.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린 우리 조상들은 눈물 나게도 그 곳에서 나라 걱정에 모금을 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시작해요. 와, 정말 뭉클했어요. 맘이 동한 거예요. 작가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저랑 딱 맞는 거였죠. 여행을 좋아 하니 맞았고, 사진 작업으로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고요.”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다빗 킴. 독립운동가 김익주(1873~1955)의 손자다. ⓒ김동우
“이런 곳에서 과거를 소환해야 하는 일이 제 부족한 실력으로는 참 어렵더라고요.”
배경과 인물이 반투명하게 겹쳐지는 사진이 있다. 합성일까, 다중노출일까. 셔터를 오래 열고 반은 인물을 찍고, 반은 인물 뒤 벽을 찍어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 3, 4세···. 이제 한국인의 모습조차 희미해지는 후손들의 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쿠바 마탄사스에서 만난 마르따 임 김, 독립운동가 임천택(1903~1985)의 딸 이다. ⓒ김동우
다른 방식을 쓴 사진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는 날짜가 잘 맞았다. 장인환, 전명운 의거일을 며칠 앞두고 도착했다. 정확하게 110년 전 9시30분에 있었던 일, 시간을 맞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의 장인환, 전명운 의거 기념행사를 촬영했다.
“두 가지 풍경이 오버랩되면서 묘한 여운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장인환, 전명운 의사 흉상이 있긴 한데 그 주변이 너무 산만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했어요.”
멕시코에서는 애니깽 밭으로 선조들이 일을 시작한 시간인 새벽 5시에 맞춰 나가 그들이 100여년 전 봤을 풍경을 찍었다. 어둑발이 지워지기 전 유까딴의 따가운 햇빛이 쏟아져 내리기 전의 고요를 찍고 싶었다. 이민의 역사가 독립운동에서 확장한 미국, 멕시코, 쿠바에서는 그들의 시작이었던 애니깽과 사탕수수밭 등을 같이 작업했다.
알마티에서 만나 계일리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독립운동가 계봉우(1880~1959)의 증손녀다. ⓒ김동우
후손들은 자신을 찾아 줬다고 반가워했다. 밥을 차려주고, 인터뷰 중 김치를 내오기도 했다. 밥 한 끼, 김치 한 조각이었지만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적지가 많았다. 여기를 누가 찾겠나 싶은 생각에 사명감으로 기록하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감정을 추스르며 정리하지 못한 글을 쓰려는데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자꾸 엉엉 울게 돼 버렸다. 괜히 이런 작업을 해서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책을 쓰는 작업이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이유다.
“후손들을 촬영하면 저 스스로 숙연해지더라고요. 의자에 앉아 있는 분들을 촬영할 때 제가 무릎을 꿇으면 딱 맘에 드는 높이로 사진이 찍히더라고요. 그러면서 참 죄송하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매번 촬영했어요.”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묘소,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김동우
“여행 전 가지고 있던 일산의 작은 아파트 하나를 팔아 작업했습니다”
은행 빚을 갚고 보니 얼마 되지 않은 작업비로 모든 지역을 다 작업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내가 먼저 세상에 이런 작업이 있고, 거기에는 ‘패배는 했지만 실패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가 담겨 있다는 걸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뒤 2차 작업은 또 길이 생기지 않겠나 기대를 하면서요.”
지금은 “처가살이합니다”라며 웃었다. 부인이 흔쾌히 동의해 줘 가능했다.
남은 독립운동 사적지를 기록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사진가 김동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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