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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3주기 추모식 21일 거행

등록 2019.02.20 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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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려

【서울=뉴시스】 지난해 2월21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과 묘정에서 열린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2주기 추모식' 모습. (뉴시스DB)

【서울=뉴시스】 지난해 2월21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과 묘정에서 열린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2주기 추모식' 모습. (뉴시스DB)


【서울=뉴시스】 오종택 기자 = 국가보훈처는 21일 오전 11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의 순국 83주기 추모식이 개최된다고 20일 밝혔다.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해 각계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약력보고, 헌사 및 추모사, 단재의 노래 제창,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신채호 선생은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 어남리에서 출생해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후 개화사상을 접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05년 4월 성균관 박사가 됐으나 사직한 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했다.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에 참가해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해 '국채보상운동'을 벌였고,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과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하는 등 근대민족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1910년 중국으로 건너가 무관학교 설립과 교관 양성 등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항일언론활동을 했다. 1919년 4월에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해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대만으로 가다가 일제에 체포돼 뤼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옥사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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