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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역 3·1만세 운동 주역은 학생"

등록 2019.02.20 16: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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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참가자 103명 중 89명이 10~20대…53명은 학생

장성·보성·영광·해남 등지서 학생 주도 만세운동 전개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광주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20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3·1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열고 있다. 2019.02.20.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광주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20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3·1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열고 있다. 2019.02.20.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광주·전남지역 3·1 만세운동은 청년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진행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광주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20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3·1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광주국제고 노성태 역사담당 수석교사는 "1919년 광주지역 3·1 만세시위는 양림동 기독교인과 더불어 10대·20대가 중심이 됐다"면서 "2년 전 조직된 비밀결사 '신문잡지종람소' 청년 학생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만세운동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종람소는 광주 출신 동경 메이지대학 유학생 정광호가 일본에서 가져온 2·8 독립선언서와 김복현이 서울에서 가져온 3·1 독립선언서 등을 비밀리에 인쇄·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 교사는 "기독교 청년회 회원·숭일학교 등에 재학 중인 10~20대 학생들이 주도해 벌인 광주의 만세운동은 같은 해 4월8일까지 주변지역 횃불·봉화시위로 확산됐다"고 강조했다.

 노 교사는 또 "광주 3·1혁명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103명의 판결문 기록을 검토한 결과 10대는 31명, 20대는 58명이었다. 10~20대 89명 중 53명은 학생이었다"면서 "최연소자는 수피아여학교 학생 강화선으로 당시 16세였고 직업별 분류 상으로도 학생이 가장 많았다. 청년 중심의 만세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전남지역에서도 청년·학생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대 5·18연구소 임선화 연구위원은 "1919년 3월21일 장성에서는 숭실학교 교사 정선유와 학생 100여명이 만세시위 행진을 펼쳤으며, 같은해 4월18일 보성에서는 장날을 이용해 이용의 등 40~50명의 서당학생들이 만세를 선창, 주도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영광·해남 등지에서도 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들여와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면서 "나주·순천·곡성 등지에서도 10대 학생, 기독교 청년회 회원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일제에 발각돼 뜻을 이루지 못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에 나선 황행자 숭일중학교 역사담당 수석교사는 "숭일학교는 광주 3·1만세운동을 주도 학생들을 배출한 112년 역사의 학교다"면서 "안타깝게도 학교가 3차례 이전하면서 3·1운동 참여 학생의 학적부 등이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황 교사는 "학교 차원에서도 참여 학생들의 당시 행적 등 3·1만세운동사를 규명하고 정립해야 한다"면서 "의향 광주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후세에 바로 알리는 데 중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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