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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동산 인질사회와 정책 신뢰

등록 2019.02.20 15:17:32수정 2019.02.20 15: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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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동산 인질사회와 정책 신뢰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현상을 말하는 이 용어는, 지난 1973년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Norrmalmstorg)라는 지역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생겨났다.

엿새동안 무장 강도에 억류됐던 인질들이 풀려난 이후 범인에 대해 옹호하거나 사랑에 빠지는 등 비이성적인 심리 상태를 보였다. "인질범과 너무 오래 지내다보니 인질에서 풀려나는 것 자체가 되레 두려운 것"(부동산은 끝났다·2011)이었을까.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초석을 쌓은 김수현 정책실장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이 같은 상황에 빗대 '부동산 인질사회'라고 정의한다. 지난 40년 이상 온국민들이 부동산 때문에 가슴을 졸이고 마음 아파하면서 결국에는 "집값이 올라도 걱정이고, 내려도 걱정"인 사회가 됐다. 그 결과 우리 사회가 "부동산에 인질로 잡힌 형국"이라는 것이다.

인질사회에서 벗어나려면?

그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와 절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가격안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겨야 주택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높고 갈 길은 멀다.

만약 내가 인질이라면 어떨까. 처음에는 경찰(또는 정부)를 믿고 차분히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조금만 있으면 가족 품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고 되뇌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권력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되풀이 한다면? 스스로 살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생겨난 원인을 생각해보면 답은 하나다.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지는 속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로 가지 못하고 자신의 노후나 질병 등 개인 복지를 스스로 돌봐야 했다. 기업과 노조는 늘상 갈등 구조였고 정부도 복지 지출를 줄이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랜기간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복지는 기능을 상실했었다.

반면 산업은 지나치리만치 압축 성장했다. 누군가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돼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집과 부동산은 단순히 '어디 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자연스레 돼 버렸다. 한강 조망권, 스위트룸, 지역 내 최고층 등 과시적 삶의 욕구가 주택 시장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생긴데 대해 정부의 책임을 놓을 수 없다.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역전세 우려가 커지자 저소득층에 대한 전세 반환보증 가입 대상 확대를 검토하다가 철회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직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입장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전세가 당장 빠지지 않아 집주인-세입자 모두 발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며 공포감을 조성중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는데 가격안정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깡통주택(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매매가격의 80% 이상인 집)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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