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탄핵·태극기에 '함몰'…한국당 全大 수렁에서 나오나

막말·탄핵·태극기부대 논란에 전당대회 컨벤션효과 잠식

중진 "평가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양새가 말이 아냐"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2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제주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오세훈(왼쪽부터), 황교안, 김진태 당 대표 후보 등이 연설회에 앞서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9.02.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가 막말, 탄핵, 태극기부대로 당 안팎에 큰 논란을 일으키면서 재기의 발판을 만들기보다 오히려 아킬레스건만 드러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권 '잠룡'으로 불리는 거물급 인사가 당대표 후보로 출전했지만 잇따라 발생한 내부적 수렁으로 인해 당의 1인자를 가리는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가 잠식된 채 '축제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의 주된 쟁점 중 하나로 급부상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도 미래 비전을 향해야 할 전당대회를 과거에 발 묶이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황 후보의 모호한 화법이 화를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는 "탄핵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절차상 하자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존중한다", "객관적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탄핵결정은 타당하지 않다" 등의 불분명한 발언으로 혼란을 부추겼다.

여기에 김진태 후보가 황 후보와 겹치는 강성보수의 틀 안에서 나름 차별화 전략으로 탄핵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선택하도록 압박하고, 오세훈 후보는 황 후보를 '탄핵총리'로 명명하고 맹공을 가하면서 당내 공방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전됐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주의와 국민을 모독한 탄핵 부정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며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국민을 분열하는 극우의 길을 계속 고집하면 국민의 지탄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한국당 전당대회가 극우·극단주의의 판이 되는 느낌"이라며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배격하는 극우·극단주의에 경도된 모습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태극기부대의 '출현'은 컨벤션 효과를 잠식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대형 악재라는 평가가 당 안팎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자유한국당의 지지기반 중 충성심 높은 고정 지지층인 태극기부대가 정작 당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린 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대구=뉴시스】우종록 기자 = 18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김진태 당 대표 후보 지지자들이 연호하고 있다. 2019.02.18. [email protected]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18일 발표(조사기간 2월11~15일)한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3.7%p 하락한 25.2%를 기록했다. 한국당의 '텃밭'인 TK(대구·경북)마저 48.5%에서 34.9%로 무려 13.6%p 떨어졌고, PK(부산·경남) 역시 38.6%에서 32.5%로 6.1%p 하락했다. 60대 이상과 20대에서는 8.4%p, 5.8%p 각각 하락했다.

리얼미터가 21일 발표(조사기간 2월18~20일)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는 26.3%를 기록, 한 주 만에 반등했으나 상승폭은 1.1%p에 불과했다. 태극기 부대에 대해 한국당이 취해야 할 입장으로 응답자 57.9%가 '단절해야 한다'고 택한 데 비해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26.1%에 그쳐 태극기부대가 국민적 눈높이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을 뒷받침했다.

극우 성향과 극성 당원이 많은 태극기부대는 탄핵 정국 이후로는 세력이 위축된 것으로 보였지만, 전당대회를 앞두고 주변에 당원가입을 독려하고,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곳이면 조직적으로 집결해 힘을 과시하면서 놀라운 결속력을 보여줬다.

일부 후보들은 태극기부대에 구애하기 위해 강성 발언을 쏟아내거나 동조하면서 '멍석'을 깔아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김진태 후보는 태극기부대의 극우성향에 대해 "그런 극단적인 것은 거의 없다. 순수성에 대해 자꾸 토를 다는 게 더 문제"라고 반박했고, 황 후보는 "태극기 세력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당의 확장성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전혀 동의하기 어렵다"고 옹호했다.

한 당직자는 "합동연설회 장소마다 수용 인원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태극기부대가 결집해서 목소리를 내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 당의 지지자들인데 오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출신 한 야권 의원은 "태극기부대가 전당대회를 따라 다닐 줄은 생각도 못했다"면서 "태극기부대를 이용하는 후보들도 문제지만, 아직까지 (태극기부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당의 현실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견을 나누며 대표 후보자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email protected]

이런 역효과를 의식한 듯 태극기부대는 21일 부산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는 자중 모드로 돌아섰다. 김진태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의 정견발표 중에도 "김진태"를 연호하던 때와 달리 침묵을 고수했다. 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욕설, 폭언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과열 경쟁으로 인해 막말 폭언을 쏟아내던 전당대회 분위기는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진정되고는 있지만 당내에서는 잇따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청년최고위원에 출마한 김준교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종북", "민족반역자"로 비유하고 "저딴 게 대통령" "저 자"등의 막말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21일 합동연설회에서 "그동안 사려 깊지 못해 다소 과격한 언행으로 우리 당의 축제인 전당대회에 누를 끼치게 돼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당 선관위 관계자는 "김준교 후보에 대한 징계 검토는 아직 착수하지 않은 상태"라며 "전당대회 기간 중에는 자칫 중립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 선거가 끝난 후에야 징계 논의가 이뤄질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5·18 망언, 막말을 누가 예상했겠느냐"면서 "모처럼 전당대회를 계기로 제대로 된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컨벤션 효과를 떨어트린 게 아쉽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번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철회한 모 중진 의원은 "막말이란 기준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전당대회에 대한평가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라며 "여권이 이를 문제 삼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당에서도 후보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좀 격조 있게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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