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지훈 "허벅지 굵어져 맞는 바지 없다"···엄복동 올인
비 ⓒ레인컴퍼니
27일 개봉하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타이틀롤 비(37·정지훈)는 이렇게 말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벌인 자전거 대회에서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한 자전거 영웅 엄복동(1892~1951)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순제작비 100억원, 총제작비 13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영화 '사랑의 대화'(2013),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등을 연출한 김유성(43)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국내 스크린 복귀는 '알투비: 리턴투베이스'(감독 김동원) 이후 7년 만이다. 그간 해외 활동에 집중해왔다. 중국 영화 '로수홍안'(2014), 중국 드라마 '다이아몬드 러버'(2015) 등에 출연했다.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계속 연기를 할 것이면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만들어야될지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가수와 연기자로 살아가고 있다. 아시아투어를 하고 앨범 제작에 관여하던 중이었는데,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겼다. 이범수 선배가 대본을 줬다. '자전차왕 엄복동'라는 제명때문에 처음에는 가족영화인 줄 알았다. 6개월의 여유가 생겨서 스케줄은 맞았다. 우리나라 사람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이범수에 대해서는 "힘이 되는 존재였다"며 치켜세웠다. "사실 한 달 전부터 이범수에게 '할리우드에 오디션 보러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막상 다가오니 말하기가 힘들었다. 프로덕션에서 출연을 결정한 것이라면 갔겠지만, 내가 후보군 중 한 명이었다. 촬영장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제작자로서 이범수 선배도 이해하게 됐다. 만약 선배가 배우로만 참여했다면 '형, 저 가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제작자로 일한 적이 있어서 얼마나 힘든 줄 알고 있다.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베테랑 연기자도 소화하기 어려운 역할이었다.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체력적 소모가 많았지만, 모든 자전거 경주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배역을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자전거 특훈에 돌입했다. "올림픽공원 선수촌에서 국가대표 코치한테 3개월 반동안 훈련을 받았다. 전문 사이클 선수들이 받는 훈련을 똑같이 받았는데, 고통스러운 기억 밖에 없다. 아침 8시30분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연습했다."
당시 자전차 경기장을 재현한 흙바닥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훈련부터 촬영까지 자전거로 달린 거리가 무려 지구 반 바퀴(2만㎞)다. "1990년대에는 자전거 트랙이 없었다. 모래 바닥에서 연습했던 게 아니라서 현장에서 더 힘들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앞만 보면서 달려야 하니 외로웠다. 깊은 잠에 빠지지도 못했다. 다른 것으로 혼나는 것은 괜찮은데, 노력을 안 해서 혼나는 것은 싫었다. '연기가 어설펐다' '자전거를 못 탔다' 등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비의 집념은 생동감 넘치는 경주 장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후유증도 있다. "허벅지가 많이 굵어져서 입을 바지가 없다. 하하. 요즘 젊은이들이 스키니를 선호하지 않나. 당분간 두 바퀴로 된 건 사양하고 싶다."
2003년 KBS 2TV 월화극 '상두야 학교 가자'로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풀하우스'(2004)가 국내는 물론, 중국어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할리우드 영화 '닌자어쌔신' 주연을 맡아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까지 거머쥐었다. 드라마 '이 죽일놈의 사랑'(2005)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14) '돌아와요 아저씨'(2016),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등에 출연했다.
지난 연예계 생활에 대해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감사한 마음이다"고 돌아봤다. "당시만 해도 하나의 직업으로 각인된 사람이 또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구조였다. 연극영화과를 나왔고 연기가 진심으로 하고싶었다. 감사하게도 대중이 많이 사랑해줬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올 연말 앨범을 내고 가수 활동을 이어간다. "좋은 작품이면 악역이 됐든 뭐든지 하고 싶다"며 연기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겸허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년동안 늘 심판을 받아왔다. 직업의 특성상 심판을 받는 것은 두렵지 않다. 천천히 나를 만들어가는 게 앞으로의 숙제인 것 같다. 독립영화·예술영화 관계자들과 접촉 중이다. 작은 역할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숨어 있는데 아닌 듯한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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