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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아름, 윤동주와 안중근 극작가의 3·1운동 100주년

등록 2019.02.24 10: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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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작가 ⓒ서울예술단

한아름 작가 ⓒ서울예술단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뮤지컬 팬들이 떠올리는 일제강점기 위인은 두 분이다. 시인 윤동주(1917~1945)와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서울예술단의 가무극(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와 에이콤의 뮤지컬 '영웅' 때문이다.

두 인물을 무대 위로 생생하게 부활시킨 주인공은 작가 한아름(42)씨다. 뮤지컬계에서 자타공인 '일제강점기 항일 전문 작가'로 통한다. 극작은 '엉덩이 싸움'이라고 정의하는 한 작가의 자료 조사량은 어마어마하다.

그녀는 일부에서 일제강점기 경성을 낭만적으로 화려하게 그리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다고 고백했다. "나라 잃은 청년들의 고뇌가 정말 대단했거든요. 계속 공부할 때마다 배워요. 그래서 계속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죠."

'윤동주, 달을 쏘다.' 속 윤동주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경성을 떨어져서 바라보고, '영웅' 속 안중근은 야수의 심정으로 일제의 심장을 겨누었다.
 
3·1 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두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국내 양대 대형 공연장에서 나란히 재공연한다.뮤지컬배우 박영수·신상언이 타이틀롤을 맡은 ‘윤동주, 달을 쏘다'는 3월 5~17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배우 정성화·양준모가 안중근을 연기하는 '영웅'은 3월9일부터 4월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저항시인으로 기억된 윤동주의 보편적 인간애를 승화시킨 작품으로 2012년 초연했다. 이번이 다섯 번 째 공연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윤동주라는 캐릭터가 선명하게 보인다. 극중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물음에 "사람!"이라고 외치는 순간, 객석은 눈물바다가 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서울예술단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서울예술단

한 작가가 제일 고민한 지점은 '윤동주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옥사했다'는 부분이다. "윤동주 시인님이 하셨을 것 같은 말씀을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여러 단어를 넣고, 문장을 고쳤다가를 반복했죠."

그러다가 윤동주의 시 '아우의 인상화' 구절을 떠올렸다.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다. “그 시가 너무 슬펐고, 마지막에 ‘사람’을 넣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퍼즐의 마지막 피스처럼, '사람'으로 인해 이 작품이 완성 됐어요."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 또 특기할 만한 점은 '별 헤는 밤' 등 윤동주의 시를 노랫말로 옮기는 대신, 시 그대로를 삽입했다는 것이다. 윤동주 유족이 한 작가를 믿고 시어를 노랫말로 옮겨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오상준 작곡가(51)와 '시는 시로서 읽힐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전제에 동의했다. "시는 읽은 사람에 따라 해석이나 받은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음악이 덧대지는 순간 저희가 해석한 색깔이 보일 것 같았어요."

한 작가와 오 작곡가는 뮤지컬계 대표적인 콤비다. '윤동주, 달을 쏘다.'뿐만 아니라 서울예술단의 다른 작품이자 이정명 작가의 작품이 원작으로 한글창제를 다룬 '뿌리 깊은 나무'를 작업했다.

'영웅'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던 두 사람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윤동주, 달을 쏘다.'와 함께 대표작이 됐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던 2009년 초연했다. 당시 윤호진 연출,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김문정 음악감독 등 뮤지컬계에서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이 참여해서 주목 받았는데 뮤지컬 신예들이 주요 창작 스태프였다.

작품은 안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조명,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의 면모와 운명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호평 받았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사과하면서도 그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15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하는 넘버 '누가 죄인인가'는 기존 뮤지컬의 작사, 작곡 어법과 달라 파격적인 실험이라는 평도 들었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서울예술단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서울예술단

"작곡가님과 '영웅'을 하고 갈급함과 갈증을 느꼈어요. 함께 하셨던 분들이 워낙 쟁쟁해 좋은 작품이 나왔지만, 저희 둘이 갖고 있었던 것이 많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많이 느꼈죠. 그래서 더 노력하고 공부했고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 합이 더 잘 맞았죠."

'영웅'은 10주년의 역사가 쌓인 '스테디 셀러'여서 일화도 많다. 특히 초연 당시 새로운 작품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안중근이 총을 쏠 때, 넘버를 부르지 않았는데도 박수가 터져 나오고 객석 일부에서는 "잘 했다"는 큰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이런 관객 반응은 공연계에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관객분들이 그런 마음을 표출할 시간, 공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숙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기도 했죠. 안중근 외손녀분이 초연 때 보셨는데 '너무 잘 봤다'고 말씀 주셔서 뿌듯했죠."

유족들이 작품을 좋게 봐줄 때 한 작가는 몸 둘 바를 모른다. 이처럼 좋은 작품은 실제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살려낸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영화 '동주'(2016)에 앞서 송몽규, 강처중, 정병욱 등 윤동주와 함께 시대의 아픔을 나눴으나 그간 조명되지 않은 청춘들을 부각시켰다.

‘윤동주, 달을 쏘다.' '영웅' 외에도 한 작가가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은 또 있다. 광복을 두 달 여 앞둔 1945년 초여름에 일제시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대의·사랑·우정을 그린 연극이 원작인 뮤지컬 '청춘 18대 1', 일제강점기 말모이를 주도한 조선어학회를 창립한 외솔 최현배(1894~1970)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외솔' 등이다.
뮤지컬 '영웅'

뮤지컬 '영웅'

특히 '외솔'은 학자의 삶을 뮤지컬로 승화시킨 점을 높게 평가 받았는데 한 작가는 정작 반성을 많이 했다. 이미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을 많이 쓰다 보니, 역사를 범주화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카테고리로 보지 않고 인물마다 개별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작가인데 처음 글을 쓸 때 그렇게 보지 못했던 거예요. 최현배의 아픔은 윤동주, 안중근의 아픔과는 또 다른 아픔인데 말이에요. 단순히 '항일투사' '일제에 맞섰던 인물'로만 단순하게 그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한 작가는 고전을 원전으로 삼은 연극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뽐낸다. 2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폐막하는 황정민(49) 주연의 연극 '오이디푸스'가 보기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가 원작으로 한 작가는 각색을 넘어 완전히 새롭게 다시 썼다.

작년 남편인 서재형 연출·황정민 주연·샘컴퍼니 김미혜 대표 프로듀서 제작을 통해 '리차드 3세'를, 고전을 현대로 바싹 당겨왔던 한 작가는 이번에도 같은 조합으로 그 어려운 걸 또 해냈다. 특히 '과연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되며 단순한 비극이 아닌 위로를 주는 묘까지 발휘했다.

진실을 대면한 오이디푸스가 결국 봐야할 것을 못 본 죄책감으로 두 눈을 찔러 스스로에게 가장 무거운 형벌을 내리지만, 그가 지팡이를 들고 세 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다른 종류의 희망이 뭉근하게 배어 있다.

한 작가는 이번 '오이디푸스'의 키워드에 관해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선의'였다고 했다. 한 작가가 과거 서 연출과 역시 오이디푸스를 원전으로 삼아 선보인 음악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에는 차가운 기운이 배어 있었다.
연극 '오이디푸스' ⓒ샘컴퍼니

연극 '오이디푸스' ⓒ샘컴퍼니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결국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누군가의 선의와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이디푸스가 버려졌을 때 양치기의 선의로 살아났고, 낯선 이방인인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도 테베 시민의 선의였기 때문이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누군가 쓰러졌을 때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죠. '오이디푸스' 속 대사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고귀한 일은 남을 돕는 것에 대한 고민이 요즘 들어요. 어떤 삶이 개인의 비극일 수 있지만 시대의 비극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이 원작인 창작 오페라 '천생연분', 원작과 역사적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 본 창극 '메디아'와 '아비, 방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이름 값을 해낸 한 작가는 올해 다른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냈다.

국립발레단이 5월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울산문화예술회관과 11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일 신작 전막 발레 '호이 랑'을 썼다. 립발레단 단원이자 안무가로 활약 중인 강효형의 두 번째 전막 발레이기도 한 이 작품은 진취적인 여성의 성장 드라마다.

국립발레단이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에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달라고 청했고, 한 작가가 제시한 결과물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으로 알려진 중국 여전사 화목란 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작가가, 조선시대 홀아비와 살던 효녀로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군역을 맡는 '부랑'의 이야기를 발레 작품으로 옮겨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도 흡족해했다. 이 덕에 발레 작품에서 드물게 발레리나가 발레리노의 춤을 추는 명장면이 기대된다.

"한국 이야기지만 세계 어디서나 통할 보편적인 이야기죠. 발레리나라면 누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한 새로운 캐릭터도 찾고 싶었어요."

작가 한아름의 인물 탐구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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