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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토마스 크바스토프, 키 132㎝ 성악가의 재즈

등록 2019.03.20 14: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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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크바스토프 ⓒLG아트센터

토마스 크바스토프 ⓒLG아트센터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망망대해 유유히 울려퍼지는 뱃고동 소리. 19일 밤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확인한 독일의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60)의 목소리다.

왜 그가 '작은 거인'으로 통하는지 수긍이 갔다. 어머니가 임신 중 입덧을 완화하려고 복용한 약물(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크바스토프는 키가 132㎝에 불과하다. 손가락이 7개, 어깨와 붙은 듯한 손 등 중증 선천기형이다.

육체가 악기인 성악가인데 쇠사슬에 묶인 몸으로 태어난 격이다. 하지만 중후하면서도 포근한 그의 저음은 재즈 멜로디와 리듬의 자유를 타고, 쇠로 만든 고리를 벗어나 마음껏 공연장을 떠 다녔다. 굵은 목소리로 붓질한 프리 드로잉 같았다.

크바스토프는 세계를 호령한 바리톤. 독일 최고 권위의 음반상 에코상과 세 차례 그래미상도 받았다. 데뷔 30여년 만인 2012년 건강이 허락지 않는다며 성악가로서 은퇴했다.

은퇴 전인 2007년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재즈 앨범 '워치 왓 해픈스(Watch What Happens)'를 발매하기도 한 크바스토프는 재즈 가수로 전향했다. 최근 소니 레이블에서 재즈 앨범 '나이스 '엔' 이지(Nice 'N' Easy)'를 발표하고 투어에 나섰다.

이날 '문글로(moonglow)'에서 크바스토프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귓가에 스며들었다. 리듬감이 넘치는 스티비 원더의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For Once In My Life)'는 우아하고 먹먹했다. 피아니스트 프랑크 카스테니어가 건반을 치는 것이 아닌, 줄을 뜯는 전주로 시작한 존 레넌의 '이매진'은 아늑함을 덧입었다.

재즈 특유의 그루브가 아쉬운 청중이 있을 법도 했지만, 이날 크바스토프는 자체로 재즈였다. 재즈는 감히 해석할 수 없는 그 무엇, 즉 '이츠 재즈'다. 크바스토프가 보여준 표정과 위트 그리고 익살이 바로 그것이다. 클래식음악은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지만, 재즈는 그의 정신을 세계 곳곳으로 자유롭게 데려다주고 있다.  
왼쪽부터 카스테니어, 크바스토프, 하프너, 일그 ⓒLG아트센터

왼쪽부터 카스테니어, 크바스토프, 하프너, 일그 ⓒLG아트센터

무엇보다 다른 악기를 배제하고 음성 하나 만으로 다양한 소리를 창출해냈을 때가 절정이었다. 혀로 볼을 튕기는 소리는 물론 작게 내뱉은 괴성, 웃음, 심지어 재치기와 기침마저 음악이 됐고 그것은 재즈였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이라고나 할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핥는 소리 등 특정 청각, 시각 등을 강조해 이를 접하는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크바스토프 목소리가 ASMR이었다.

이런 그의 목소리에 종종 일어나서 재기발랄한 연주를 들려주는 카스테니어의 피아노, 스타일리시한 외모에 드럼채 대신 '뿅뿅망치'로도 연주하며 여성 관객의 환심을 산 볼프강 하프너의 드럼, 무대 한 가운데서 정말 묵묵히 연주한 디이터 일그의 더블베이스가 더해져 재즈의 꼭짓점을 맛 봤다.

크바스토프는 이날 부인과 딸이 객석에 앉아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커튼콜에서 그는 누구보다 커 보였고, 객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크바스토프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그에게 여전히 인간 승리를 써내려가고 있다고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음악을 저평가하는 일이다. 음악은 들려주는 것이나, 듣는이나 그저 음악 자체로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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