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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코감기·유머에도 역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록 2019.03.23 11:10:52수정 2019.03.23 11: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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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지메르만 ⓒKasskara and DGG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Kasskara and DGG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회상 속에 그려진 정경은 늘 완벽하다. 22일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연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2)의 연주가 대표적인 보기다.

그는 숭고하기까지 한 완벽주의 결정체를 자랑하는 연주자. 지난해 10월 같은 장소에서 에사 페카 살로넨(61)이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번스타인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를 협연했지만 한국에서 독주회를 여는 것은 16년 만. 그래서 한국 청중의 기대감은 더 높았다.

그런데 이날 1부 중 지메르만이 들려준 브람스 소나타 3번 1악장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청중이 한둘이 아니었다.

힘이 떨어진 듯한 터치로 음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했다.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2악장은 냉소적이면서 투명한 어조로 읊조리듯 연주하는 지메르만의 본 정서가 살아났지만 전체적으로 브람스 소나타 3번 연주에 대한 청중의 호불호가 갈렸다. 템포도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코감기 탓이었다. 지메르만은 1부에서 건반뿐만 아니라 콧물도 상대해야했다. 객석 앞쪽에 앉은 청중들은 그가 자주 훌쩍이고 코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1부 연주가 끝난 뒤 대기실로 들어가기 직전 입구 앞에서 고개를 젖히고 손수건으로 코를 막아야 할 정도로 코감기가 심했다.

오죽했으면 지메르만은 앙코르로 쇼팽 마주르카 14번, 15번, 17번을 들려주기 직전 "내 코가 마주르카의 연주를 허락해줬다"고 농을 건넸을까.

그런데 이날 2부에서 들려준 쇼팽 스케르초 4개만으로도 명불허전이었다. 무엇보다 섬광처럼 피아노 건반을 훑는 것을 시작으로 청중도 감기에 걸려버렸다. 정확한 병명은 서정적 감기. 영롱하면서도 이렇게 강렬하고, 유려하면서도 이렇게 확신에 찬 연주에 전염이 안 될 수 없다.

'병적인 완벽주의자' '얼음 왕자' 등의 수식으로 차가운 기운을 풍기기로 유명한 지메르만의 색다른 모습도 볼 수 있는 독주회였다.

백발이 더 성성해진 그는 악장 사이마다 기침이 잦았던 객석을 향해 앙코르 직전 미소와 함께 "플리스 코프(Please cough)"라고 청했고 평소보다 말도 많았다.
[리뷰] 코감기·유머에도 역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앙코르에서 쇼팽 마주르카 15번과 17번 연주 사이 문밖으로 나갔다 오기 귀찮다는 뉘앙스의 몸짓으로 너스레를 떨고 그냥 연주했으며, 17번을 끝낸 뒤에는 피아노 건반 뚜껑을 조심스레 닫는 위트가 담긴 퍼포먼스로 이날 연주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의 까다로운 명성으로 인해 초반에 다소 경직됐던 객석 분위기도 막판에는 화기애애했다.

한 때 자신의 전용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비행기에 싣고 다녔다는 일화의 주인공인 그는 이번에 한국의 공연 기획사 마스트 미디어에 고작(?) '사진 촬영 금지' '녹음 금지' '녹화 금지' '피아노작업 중 외부인 출입금지' 등만 내걸었다고 한다.

그래도 까다로운 성격은 어디 안 가는 듯하다. 2부 두 번째 스케르초 연주를 끝낸 뒤 주먹을 불끈 쥐어 언제부터 지메르만이 그렇게 호기로운 사람이 됐냐며 청중들 머릿속에 물음표가 찍혔는데, 사실 손으로 할 수 있는 욕을 했다는 목격담이 여럿 나오면서 역시 지메르만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터치가 못마땅한 것에서 나온 반응으로 지메르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안도감이 지배적이었다. 연주에 대한 완벽주의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릇 지메르만이라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시니컬한 정서를 풍기며 소름 끼치는 완벽한 음악을 들려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컨디션 악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며 점차 본연의 연주 궤도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완벽은 사투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절감케 했다.

지메르만은 23일 같은 장소에서 브람스 소나타 2번, 쇼팽 스케르초 4개, 마주르카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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