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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화상 상봉'에 선정돼도 웃지 못하는 이산가족들

등록 2019.04.10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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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사실 이산가족들은 화상상봉 대상자로 선정되는 걸 마냥 좋아하진 않습니다."
 
13만3272명 중 생존자는 5만5521명, 생존자 중 7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86.2%. 전월 대비 사망자 223명 증가. 지난 2월 말 기준 정부 집계 이산가족 등록현황이다.

이산가족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매달 수백명의 신청자들이 끝내 헤어진 혈육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그런 이들이 왜 화상상봉 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을 꺼리는 걸까.

남북문제를 오랜 기간 지켜본 이 관계자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기회가 없어지잖아요."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행사가 처음 열린 것은 2005년 8월15일이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같은 해 6월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의하면서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7년 11월까지 2년3개월간 7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3748명이 통화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신에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된 이래 화상상봉 참여자가 대면상봉에 참여한 경우는 없다고 한다. 화상상봉 참여자의 대면상봉 참여 여부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관례'에 따라 배제됐다는 것이다.

정부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워낙 (상봉 행사) 참여 기회가 제한돼 있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화상상봉 참여자에게 대면상봉 참여 기회를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으로 등록했다가 컴퓨터 추첨에서 화상상봉 대상자로 선정될 경우 대면상봉에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화상상봉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면상봉 행사가 언제 또 열릴지, 열린다고 해서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정부 입장에서 화상상봉 참여자에게 대면상봉 기회를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기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중복 참여를 허용할 경우 기회의 불공평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만남의 '기회'를 늘리면 해결될 일이지만, 북한 체제의 폐쇄성으로 인해 협의가 쉬운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지난 2008년 정권 교체를 계기로 화상상봉이 전면 중단되고, 대면상봉 참여자가 2000~2007년 1만6200여명에서 2008~2017년 3500여명으로 급감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인도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다루어져왔다. 그 결과 10년 전에 했던 "시간이 없다"는 말을 2019년에도 되풀이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여전히 한반도 정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을 개·보수하기 위해 미국과 수개월간 '제재 면제' 협의를 해야 했고, 북한은 남측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을 표출했다. 정부는 북측과의 화상상봉 관련 협의 진전과는 별개로 남측 화상상봉 시설에 대한 개·보수를 시작했다. 일단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놓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여전히 화상상봉이라는 '이벤트'의 개최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산가족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많이 늦었지만 여전히 5만5000여명의 이산가족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인도적 교류협력을 상시·정례화하려는 의지를 갖고 남북 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일회성 행사는 이산가족 절대다수의 박탈감만 키울 뿐이다. 더불어 화상상봉에 관한 규정도 정비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이 교체됐다. 김연철 신임 통일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 정착', '소통', '협력', '산림협력', '철도·도로협력' 등을 언급하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이 취임사에서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는 취임식 직후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에서 "업무 파악이 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업무 파악이 완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신임 장관의 말을 믿고 기다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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