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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처드 용재 오닐 "실내악 안으로 들어와 마음 여는 한국 청중"

등록 2019.04.29 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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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토 페스티벌', 12년 만의 마지막 공연

리처드 용재 오닐 ⓒ크레디아

리처드 용재 오닐 ⓒ크레디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신선했던 아이디어도 수명이 다했어요. 그 아이디어들이 여정을 마쳤다고 생각해요."

항해는 언젠가 끝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돼 있다. 클래식음악, 특히 실내악의 대중화에 기여한 젊은 음악 축제 '디토 페스티벌'이 12년 만에 막을 내린다.

'디토 페스티벌' 음악감독인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1)은 29일 "디토와 함께 해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제가 특별하지 않음에도,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행운아라는 점"이라며 긍정했다.

2007년 공연기획사 크레디아 정재옥 대표와 용재 오닐이 '보다 즐거운 클래식, 클래식에의 공감'을 모토로 시작한 앙상블 디토는 2009년 디토 페스티벌로 발전했다. 탄탄한 프로그램, 클래식계 아이돌로 불리는 스타들의 응집력 등으로 클래식계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2017년 10주년을 맞아 재도약했고, 지난해 수도권을 벗어나 경기 안산으로 페스티벌을 확장하기도 했다.

특히 2008~2009 예술의전당 유료관객 1위, 누적 100회를 넘는 국내 투어뿐 아니라 도쿄, 오사카, 상하이 등 해외 진출 성과를 거뒀다. 스타 연주자와 레퍼토리 개발, 클래식과 비주얼 퍼포먼스와의 협업, 전시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을 들었다. 6월 12~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고양아람누리에서 펼치는 2019 시즌 '매직 오브 디토'로 시리즈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디토페스티벌 출범 당시 국내 실내악 환경은 척박했다. 이 페스티벌의 목적 중 하나는 대중에게 실내악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후 이 페스티벌의 부흥과 함께 여러 실내악단이 결성되고 관련 페스티벌도 여럿 생겼다.

용재 오닐은 "디토 덕에 다양한 커뮤니티 사람들을 실내악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어요. 실내악을 비롯한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은 새로운 청중도 있었지요"라고 자평했다.

 베토벤, 바그너 등 대형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들은 객석에 앉는 청중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전율을 안긴다. 오케스트라가 내뿜는 아우라가 공기, 의자 진동을 통해 전달된다. '강력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인터뷰]리처드 용재 오닐 "실내악 안으로 들어와 마음 여는 한국 청중"

실내악은 다르다. 대중에게 세밀하게 다가가야 하니, 더 어렵다. 하지만 용재 오닐에 따르면, 어떤 음악은 '고잉아웃'하고 어떤음악은 '컴인'한다. 우주의 비밀을 풀어야 하는 듯한 실내악은 후자, 즉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국 청중이 특별했던 점은 정서가 민감하다는 거예요. 실내악 안으로 들어오셔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죠."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특히 대중적인 예술, 특정 마니아를 위한 예술 사이에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음악은 사람을 잡아서 끌고 오기보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에요. 탐험할 준비가 돼 있을 때 모든 것을 받아들 수 있는 존재이고, 그것이 음악의 마법"이기 때문이다.

음악의 다른 놀라운 점은 같은 멜로디, 리듬이라도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연결시키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 디토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취업이 어렵고,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돈을 내고 클래식음악을 들으러오라고 청하기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 전통 클래식계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빠르게 변하는 유행도 따라가기 버거웠다. "제가 좋아하는 수제 브랜드 버거가 있어요. 그게 먹고 싶다고 하니, 주변에서 '요즘 누가 그걸 먹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드라마 '대장금'을 너무 좋아하지만,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죠.

하지만 용재 오닐은 한탄만 하지는 않았다. 전통은 새로운 세대로 인해 새롭게 계승돼 이어지는 법, "디토와 함께 한 시간이 공유되고 영향력을 가지고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자극으로, 형성해나가는 지점과 만나기를 바라죠. 예를 들어, 현재 세상을 가장 많이 바꾼 것 중 하나가 스마트폰이잖아요.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오히려 떨어뜨리는 아이러니함도 있죠. 선물이자 저주인 셈입니다. 하지만 다음 클래식 음악세대가 스마트폰을 잘 활용해 대중과 연결할 비밀을 찾을 수도 있어요."

디토 페스티벌이 대중적인 프로그램과 이벤트만 좇아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존 애덤스, 조지 크럼, 스티브 라이히, 올리비에 메시앙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해왔다.
[인터뷰]리처드 용재 오닐 "실내악 안으로 들어와 마음 여는 한국 청중"

진은숙 같은 이 시대의 한국 현대음악 작곡가를 존중한다는 용재 오닐은 2017년 제72회 스위스제네바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지휘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최재혁의 작품도 이번에 소개(6월28일 예술의전당 IBK체임버홀)한다. "재능 있는 젊은 작곡가를 소개하는 것도 사명이죠."

이와 함께 용재 오닐은 자신의 음악적 멘토이자 미국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와 공연(6월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한다. 앙상블 디토는 지난 시즌의 레퍼토리를 하이라이트로 들려주는 '디토 연대기, 2007~2018'도 마련한다. 축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대니얼 정·유치엔 쳉, 첼리스트 제임스 정환 김,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 피아니스트 조지 리 등이 나온다. 디토 페스티벌은 지난해 안산에 이어 올해 고양으로 축제 반경을 넓힌다. 고양시는 지난 페스티벌에서 1000명의 지역 청소년 학생들이 앙상블 디토와 함께 연주한 천인음악회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디토 페스티벌이 한국 실내악 음악의 숨통을 틔워준 플랫폼이었던 만큼,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재혁 같은 젊은 뮤지션들이 많아요. 디토는 끝나지만, 기회는 이어지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젊은 뮤지션이 음악에 대한 사랑을 이어갈 겁니다. 디토의 여정은 끝나지만 횃불은 이어져요. 진정성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통할 겁니다."

정 대표와는 디토의 여정에 대해 오랜기간 이야기를 나눠왔다. "모든 움직임은 관성을 가지고 있으니,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해온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돈도 많이 들고 준비도 어려워서 헌신이 없었으면 성사될 수 없었어요. 정 대표님 인내심과 한결 같음 덕분에 안정적으로 끌고 왔죠."

매년 쉽지 않았지만 12년을 끌고 올 수 있었던 비결로 "진정성"을 꼽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가치, 성향이 모두 다른데 앙상블에게 리더라고, 제가 가진 믿음을 밀어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럼에도 12년 동안 '예술은 삶보다 오래 산다. 초월적이고, 보편적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다 같이 올 수 있었어요."

용재 오닐은 마라톤 마니아다.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음악가로서 느끼는 감정과 마라톤을 뛰면서 겪는 감정이 비슷하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디토페스티벌 마침표를 앞두고 있는 현재는 음악적 마라톤 코스의 어느 지점에 닿았을까. "6월에 디토 페스티벌이 끝나면, 제가 어떤 메달을 받게 될 지 몰라요. 그것보다 하나의 마라톤이 끝나면 다음 경주를 생각해야 하죠. 매일 아침은 새로운 선물이고 새로운 기회로 봐요. 새로운 시작이니, 또 새로운 코스를 뛰어야죠."
[인터뷰]리처드 용재 오닐 "실내악 안으로 들어와 마음 여는 한국 청중"

용재 오닐은 6·25동란 당시 고아가 돼 미국으로 입양된 어머니와 아일랜드 출신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위싱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비올라를 통해 세계를 누비게 됐다. 2001년 세종솔로이스츠 단원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투어에 함께하면서 한국을 첫 방문했다.

용기를 뜻하는 '용'(courageous)과 재능을 뜻하는 '재'(talented)를 합친 가운뎃이름은 세종솔로이스츠를 창단한 바이올리니스트인 강효 예술감독이 그를 위해 지어준 것이다.

2004년 KBS 1TV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그와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2005년 1집 '리처드 용재 오닐'을 발매했고 그해 한국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열어 전석 매진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그가 속한 실내악단 '에네스 콰르텟'이 용재 오닐의 데뷔 15년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를 꾸몄다.

무엇보다 용재 오닐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자적인 성향으로 국내에서 주목 받기 힘들었던 비올라의 위상을 격상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포용의 리더십은 비올라를 닮았다.

"작은 마을의 숲에서 음악을 연주했어요. 베토벤, 드뷔시, 모차르트를 들으면서 우주로 갈 수 있었죠. 비올라가 저를 이동시켜줬습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매일 좀 더 나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거예요. 좀 더 길게 내다 본 목표는 저도 이제 한국 나이로 마흔 둘인데, 좀 더 오래 연주할 수 있도록 건강을 지키는 거죠. 하루에 열두시간씩 보잉(활놀림)을 하다 보면, 신체적으로 힘들어요. 반응도 예전처럼 빠른 것 같지 않고, 예전에는 시차에도 끄덕 없었는데···. 하하. 잘 나이를 먹어야죠."

하지만 용재 오닐의 마음 나이는 여전히 젊다. 음악과 삶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삶은 미스터리 자체에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죽음은 무엇이며, 나는 영원히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을 안고 살죠. 그런 추상적인 물음들 사이에서 음악은 '삶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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