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아동학대, 이웃·제도·사회 모두의 잘못···영화 '어린 의뢰인'
하지만 이듬해 4월 동생을 죽인 것은 임씨이고, 임씨의 학대가 두려워 김양이 동생을 죽였다고 허위진술을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자아냈다. 이른바 '칠곡계모' 사건으로 알려진 아동학대살인이다. 임씨는 두 자매에게 억지로 청양고추를 먹이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 등 학대를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물고문은 기본이고, 대변이 묻은 휴지를 먹게하기도 했다. 임씨에게 주어진 형벌은 징역 15년이다.
아동학대는 보통 가정 내의 문제라고 치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겨 주변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웃의 외면, 제도의 허점, 사회의 무관심이란 3박자가 맞아 떨어져 발생한 이 사건으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통과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동학대는 꾸준히 증가했고, 2016년 기준 2만9674건의 신고가 발생했다. 칠곡계모 사건이 발생한 2013년보다 1만2000여건이나 늘어난 수치다.
바로 지난 한 주만 하더라도 12세 여자 아이가 계부로부터 성폭행에 살인까지 당한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2016년 ' 원영이 사건'으로 알려진 '평택 아동 암매장 살인사건', 같은해 부천 초등생 토막 살인 사건, 2015년 인천 연수구 11세 학대 소녀 탈출 사건 등 거의 매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칠곡 계모사건을 모티브로 다시 한 번 아동학대에 대한 심각성을 사회에 각인하고 이웃, 제도, 사회에 변화를 촉구하는 영화다. '재밌는 영화'(2002)로 데뷔해 '선생 김봉두'(2003),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등을 통해 웃음과 감동, 인간미 넘치는 휴먼 드라마를 선보여 온 장규성 감독은 '어린 의뢰인'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오랜 연출 화두인 '죄책감'과 '반성'에 특유의 해석을 보여준다.
영화는 오직 성공 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며 주변에는 무심하기만 했던 변호사 '정엽'(이동휘)이 우연히 만난 '다빈'(최명빈)과 '민준'(이주원) 남매와 얽히게 되고, 이들에게 행해지는 가정폭력, 이로 인한 민준의 죽음, 다빈에게 씌어진 혐의로 인해 변화되는 모습을 그린다. 관객은 자신의 이익 만을 생각하며 주변에 무심했던 변호사 정엽이 극이 진행될수록 변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 동안의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제 인물과 가족들은 처음에는 사건의 영화화를 주저했지만, 제작진의 의도를 듣고 영화를 지지했다고 한다. 실제 사건의 변호를 담당했고 평생 아동인권을 위해 힘써온 이명숙 변호사는 "어린 의뢰인을 통해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이 상처를 숨기지 않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존재는 '정엽' 역의 이동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 달라지는 입체적 인물을 성실히 해냈다. 이동휘는 2013년 '남쪽으로 튀어'로 데뷔해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뷰티 인사이드', '재심', '공조', '극한직업'까지 흥행작마다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 충무로 대세 배우로 거듭났다. 능청스러운 연기로 정평나있는 그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몰입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장규성(50) 감독은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소재,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통해 많은 감동을 전해왔다. 2002년 국내 최초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로 데뷔, 두 번째 연출작이자 직접 각본을 쓴 '선생 김봉두'(2003)가 247만 관객을 모으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선생 김봉두'는 제40회 대종영화제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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