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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변신 미학...김나영&그레고리 마스 "우린 예술지상주의자"

등록 2019.05.20 16:38:01수정 2019.05.20 16: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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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국립미술학교 동창 2004년 결혼후 공동작업

대안공간등서 전시하다 성곡미술관서 첫 개인전

【서울=뉴시스】고고학적 스누피, 2008

【서울=뉴시스】고고학적 스누피, 2008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국산 캐릭터 스누피가 도자기 주전자 뚜껑이 됐다. 마치 목만 내놓고 목욕을 즐기는 듯도 보인다. 서양의 대중문화아이콘과 동양의 전통 용기가 합체된 작품 제목은 '고고학적 스누피'. 시대는 달랐지만 결국 똑같이 옛 물건이 되어버린 스누피와 주전자가 미술관에 들어와 고고하게 조명을 받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성곡미술관을 아예 목욕탕처럼 보이게 한다. 거대한 욕탕 간판사인을 전시장 입구에 붙여놓고 360도 무겁게 회전하게 해 굳이 쳐다보게 만든다.

부부작가 한국인 김나영(53)과 독일인 그레고리 마스(51)의 작품이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리프로스펙티브 REPROSPECTIVE'를 타이틀로 22일부터 전시를 연다.

한국과 독일이라는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다문화 작가이자, 여행을 일삼는 노마드적 예술가다. 이들은 잡동사니들을 살짝 변신시켜 '일상의 예술화'을 실천하고 있다.

1988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파리로 건너간 김나영은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파리 소르본느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입학한 그레고리 마스를 만났다. 2004년 결혼과 함께 "실용적인 이유로”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고정관념을 깨부수는데 일치한다. 독립성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2008년부터 ‘킴킴 갤러리(Kim Kim Gallery)’를 운영하며 기존의 전시 방법과 미술의 경제 구조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성곡미술관 전시장 입구에 거대한 목욕탕 사인이 설치되어 있다. 김나영&그레고리마스 작가의 '리프로스펙티브(REPROSPECTIVE)전에 선보인 작품이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성곡미술관 전시장 입구에 거대한 목욕탕 사인이 설치되어 있다. 김나영&그레고리마스 작가의 '리프로스펙티브(REPROSPECTIVE)전에 선보인 작품이다.


20일 오전 성곡미술관에서 만난 부부작가는 자신들을 "예술지상주의자"라며 "예술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공생 관계’라고 부르는데, 김나영은 "예술은 자기 실현이 아니다. 주장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고 그레고리 마스는 “나는 무거운 주제를 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고, 김나영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자전거에 발전기를 달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듯이, 우리의 협업은 발전기 역할을 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인 부인의 재치발랄함과 독일인 남편의 시스템적이고 진지함이 작품에 녹아 있다.
 
김나영 작가는 "그동안 대안공간등 열린공간, 험한 상태에서 전시를 해오다 닫혀진 이상적인 미술관에서 전시는 처음"이라며 "이번 전시는 15년간 제작한 작품을 재배치해, 하나로 보는 작업으로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일 오전 성곡미술관에서 김나영 작가가 '리프로스펙티브 REPROSPECTIVE'에 나온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삿집에서 나온 옛날 액자를 뒤집어 걸은 작품은 영어로 낙서하듯 써 놓기도해 한문과 산수화등이 영어에 짓눌린 분위기를 보이기도 한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일 오전 성곡미술관에서 김나영 작가가 '리프로스펙티브 REPROSPECTIVE'에 나온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삿집에서 나온 옛날 액자를 뒤집어 걸은 작품은 영어로 낙서하듯 써 놓기도해 한문과 산수화등이 영어에 짓눌린 분위기를 보이기도 한다. 


전시 타이틀 ‘리프로스펙티브(REPROSPECTIVE)’는 ‘재생하다 Reproduce’와 ‘회고하는 Retrospective’이라는 뜻이 합해져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 작가의 지난 15년간의 작업을 되돌아보는 전시로 꾸몄다.  전시는 4개의 방으로 구성, 각 방마다 다른 제목이 붙여진다. 이 4개의 제목은 모두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 작가의 과거 전시 제목들이다.

예를 들어 <마비된 아름다움>은 2006년 독일 뮌헨의 미니-살롱에서 열렸던 전시이고, <낭만 결핍증>은 2017년 인디아 아트페어에서 열렸던 전시다. 이와 같이 ‘리프로스펙티브’ 전은 이미 사용했던 전시 제목을 다시 사용해, 지난 15년 동안 제작한 작품들 중 각 방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선별, 조합, 배치했다.

이들에게 예술은 창작이 아니라 ‘핸드메이드 레디메이드(Handmade ready-mades)’다. 기성품을 그대로 미술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기존의 레디메이드 개념에 작가들이 살짝 손을 댄다. 일상의 소품, 만화 속 캐릭터, 기억하기 쉬운 문구나 말장난, 대중문화 패러디가 작업의 소재다. 서로 다른 맥락의 이미지와 오브제, 대중적 코드들이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섬세한 손길에 의해 이종(異種)결합되어 재탄생 하는 식이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일 오전 성곡미술관에서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가 뒤샹의 〈병 건조대 Bottle Dryer, 1914〉를 비튼, <양말 건조대 Sock Dryer〉를 소개하고 있다. 2004년 이들의 첫 공동작업이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일 오전 성곡미술관에서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가 뒤샹의 〈병 건조대 Bottle Dryer, 1914〉를 비튼, <양말 건조대 Sock Dryer〉를 소개하고 있다. 2004년 이들의 첫 공동작업이었다.


2004년 이들의 첫 공동작업이었던 <양말 건조대 Sock Dryer〉가 대표적이다. 레디메이드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뒤샹의 〈병 건조대 Bottle Dryer, 1914〉를 비튼이 작업은 오브제에 대한 유쾌한 재해석과 새롭게 부여된 도구성이 눈에 띈다. 마치 뒤샹의 병 건조대에 새로운 리터칭을 가해 양말 건조대로 다시 태어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에는 익숙치 않은 물건이어서인지 '양말 건조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잡동사니들이 모여 난해하고,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지만, 작업 곳곳에는 유머와 해학이 숨은 작품 제목과 동시에 살짝 비튼 일상과 대중문화 코드들이 넘친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지난 20여년간 지켜본 작가들로 동시대 아트씬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조명이 안돼 성곡미술관 한국중견작가 지원 프로그램 일환으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 작업은 기존의 사물들을 어떻게 새로운 개념으로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그래서 이제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세계를 경험하게하고, 보여주고자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작업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언뜻 보면 잡동사니들이 모인 것처럼 쉽게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아리송하다. 언어 유희가 한바탕 펼쳐지는 작품들, 무슨뜻일까? 엉뚱한 제목이 힌트다.

【서울=뉴시스】네가 알아내라 You figure it out 2012

【서울=뉴시스】네가 알아내라 You figure it out 2012


도라에몽과 친구들, 동성애자 빌리보이(Billy boy) 버블로 뒤덮인 키치한 화병, 신라 토기의 복제본 등 다양한 출처의 캐릭터들이 모여 기울어진 좌대 위에서 수평을 맞추고 서 있다. 작가들의 애장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무엇일까? (네가 알아내라 You figure it out)전시는 6월30일까지. 관람료 300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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