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안보이고 비오면 사라지고' 불법 차선 시공업자·공무원 적발(종합)
원청업체 '하청 장사'에 저가 도료 사용 '시민 안전 위협'
수수료 40% 떼여 실제 공사비의 60%로 부실 시공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4일 전북 전주시 전북지방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차선도색 불법 하도급 부실시공 브리핑이 실시된 가운데 경찰 관계자가 차선 도색 시 사용하는 고휘도 유리알과 일반 유리알을 비교해 주고 있다. [email protected]
특히 행정기관으로부터 차선 공사를 받은 원청업체가 고액의 수수료만 챙기고 불법으로 사업을 다른 업체에 맡기는 이른바 '하청 장사'가 만연한 것으로 확인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전북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건설사 대표 A(40·여)씨 등 20명과 무면허 하도급 업자 B(54)씨 등 9명, 총 2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또 부실시공을 묵인하고 준공검사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허위공문서작성)로 전주시 소속 공무원 C(3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 건설업자들은 지난해 전주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발주한 차선도색공사 24건(21억원 상당)을 수주한 뒤 차선도색 공사를 부실하게 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청업체들은 하도급을 주는 대가로 전체 공사 금액의 30~40%(6억2000만원 가량)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겼다.
이에 불법 하도급을 받은 B씨 등은 실제 공사비의 60%만으로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청업체들은 공사비 부족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만회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차선을 칠하는 재료는 설계안에 못미치는 양을 썼고, 저렴한 일반 유리알을 사용하는 등 부실공사를 강행했다.
실제 일반적으로 1.5~1.8㎜ 두께에 해당하는 차로의 도막(도로에 발린 도료의 층)은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야간이나 비가 내릴 때 운전자의 차로 인식을 돕는 휘도(차선의 밝기)도 기준치 미만으로 측정됐다.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희미해진 차선. 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뉴시스 DB)
조사 결과 A씨 등 원청업체들은 '도장공사업' 관련 면허만 있고, 도장기기 등 장비와 인력, 기술 등이 없어 차선도색 공사를 낙찰받더라도 직접 시공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공사가 끝난 지 6개월이 채 안 된 도로가 '재시공' 판정을 받았다.
결국 이같은 부실시공은 차선의 내구성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무엇보다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차선이 잘 안 보여 운전사의 교통사고 위험을 유발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전주 시내 한 초등학교 앞 신설도로가 휘도측정 없이 준공됐다'는 부실시공 의심 첩보를 입수,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이후 전주시·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최근 끝나거나 휘도측정 없이 준공된 도로를 조사한 결과 부실공사 정황을 포착하고 A씨 등 업자들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경찰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불법 하도급에 따른 차선도색 부실시공 사례가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업체 대표들과 감독 공무원 사이에 뇌물이 오간 정황도 살펴보기로 했다.
황호철 전북청 교통범죄수사팀장은 "이번 수사 결과 24건의 공사 중 단 한 건만 정상적으로 시공됐다"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도로 차선도색 및 교통 시설물 공사에 대해 지속해서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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