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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협상과 환상: 북·미 핵 협상의 우울한 미래

등록 2019.06.04 14: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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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세종=뉴시스】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세종=뉴시스】 북·미간 1·2차 핵협상이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2차 핵협상 실패 이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었으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협상의 동력이 남아있다고 주장하고 한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고전적인 남·북 양자적 접근 (dyadic approach)을 통해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불씨를 살리려 엄청난 노력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우리는 이번 북·미 핵협상들을 보면서 남·북한 화해는 남·북한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더 중요하게는 북·미간의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즉, 북·미간 핵협상 타결 없이는 한반도에서의 안정과 평화정착 그리고 이것의 제도화는 시작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왜 북·미간의 협상은 국제사회의 엄청난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초라하게 몇 마디 진지한 대화도 못 하고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왜 지난 시기 수많은 북미대화와 협상은 실패를 노정 (destined to fail) 할 수밖에 없었는가?

국제정치학이라는 사회과학은 북·미과 같은 숙적국가 (rival)간의 협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분석하고 이를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하였다. 사실 이 분석들에 기반해 보면 이번 북·미회담에 대한 협상타결의 기대는 거대한 환상 (myth)이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어찌 보면 짙은 비관주의에 기반한 스토리를 담담하게 전달해보려고 한다.

먼저 북미와 같은 숙적국가들은 서로가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근본적인 이슈가 양국간의 생존이라는 안보문제이다. 미국에게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앞으로의 고도화는 실존적 안보위협이다. 반면 북한에게 미국의 핵무기 포기 요구는 북한이라는 나라 생존의 핵심도구에 대한 전면 폐기뿐 아니라 혹시 모를 미국의 공격에 대한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즉 협상의 이슈 자체가 양쪽이 양보 (concession)를 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문제였다. 따라서 양국 협상 진은 이 거대한 안보와 생존의 이슈의 어디까지를 협상 항목으로 올리고 이를 테이블에서 논의할지 근본적으로 불일치했다. 비핵화라는 개념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 그 극명한 사례이다.

미국은 북한의 명시적인 주요 핵시설의 폐기를 협상테이블에 올렸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쇄와 미국주도로 진행중인 경제제재의 5개 제재안 해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제안을 받았을 경우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기존의 핵과 미사일 일부만을 제거하고 앞으로 가능할 수 있는 북한의 공세적 핵 능력 강화를 전혀 막을 수 없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협상장을 떠났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폐쇄 자체가 미국의 행동 변화 즉 지금 경제제재의 일부를 해제하는것도 어렵다고 판단해 협상장을 떠난 것이다.

이렇게 두 숙적국가가 나눌 수 없는 파이 즉 안보 혹은 생존의 문제에 관해 협상할 경우 그 타결의 가능성은 아주 미미하다는 것은 여러 역사적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 이스라엘과 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의 오슬로 협정(The Oslo Accords)이 그러했고 영국과 IRA (The Irish Republican Army)는 30년 넘게 분쟁-협상-협상실패의 악순환을 경험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쉬미르 분쟁 역시 양국의 생존과 안보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지난 60년간 모든 협상이 실패했고 지난 2월 또 군사분쟁을 겪었다.

협상에 올려진 이슈에 대한 합의형성 어려움 외에도 다른 몇 가지 근본적인 원인이 이번 북미 핵협상 실패에 작동했다. 가장 먼저 믿을만하고 능력있는 중재자의 부재이다. 북·미관계같은 수십 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협상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일종의 중재자 (mediator or umpire)가 필요하다. 이번 북미협상에서 이 역할을 한 것이 중국과 한국의 문재인 정부였다. 하지만 중국은 기대와 다르게 북·미협상 초반에 보여주던 적극적 평화 중개자에서 다시 현상 유지자로 전략적 유턴을 했다.

남은 것이 한국인데 이번 한국 문재인 정부는 북·미 핵 협상 관련 중재 역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양쪽의 비핵화 개념에 대한 합의 부재 사실도 지나친 낙관주의로 경시했고 미국이 실제 협상장에서 기존의 이상적인 비핵화 입장을 다시 되풀이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북한이 일종의 살라미 전술 (Salami Tactic)인 미미한 양보만 준비했다는 점도 파악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한국이라는 왜소한 중견국(middle power)이 갖고있는 중재 외교능력의 구조적 한계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극도의 안보 불안증 환자인 북한의 생존에의 집착을 전혀 중재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북미협상의 실패는 안보 관련 협상에서 당사자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재자 한국의 국내정치적 제약이 어느 정도 협상의 발목을 잡는지 생생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정은 체제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독재 레짐 (personalist regime)이다. 협상의 성공·실패 여부에 지도자들의 정치적 운명이 좌우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북한은 좀 더 참을성 있게 자신의 양보 (concession)을 최소화해 장기적인 협상을 시도하려는 경우가 농후하다. 협상의 의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아주 자그마한 양보와 이와 전혀 비례하지 않는 중요한 5개의 경제제재 취소를 요구한 점이 이점을 증명한다.

반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촉박한 정치일정에 살고 있다. 트럼프는 2020년에 재선에 도전할 것이고 문재인 정부는 2022년 대선을 치른다. 양 정치지도자가 남은 시간 동안 북한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 성과를 내야 하는 데드라인인 셈이다.

문제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적 성과로 까다로운 북한문제 보다는 대중국 무역 전쟁과 이란 핵문제를 국내 유권자에 호소해 재임을 시도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 제재국면에서 한국이 사용할 카드는 대북 인도지원과 경협제안 외에는 거의 없다. 즉 요란한 북·미 정상회담들은 너무도 뻔한 지난 20년간처럼 협상 결과 교착(stalemate)으로 빠져들고 있다.

솔루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미국은 제재를 극단적으로 강화하고 반면 보상 즉 북한이 핵 포기 대가로 받을 수 있는 유인을 확실하게 높이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아 미국식 비핵화에 동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극단적 제재위협의 비인도적 성격과 미국의 통 큰 보상에 대한 미국 국내 정치권의 예상되는 반발을 생각한다면 현실성은 그리 높지 않은 솔루션이다.

현 북미 핵 협상의 교착은 국제질서의 미래 예측에서 왜 현상 유지시나리오 (Business -as-Usual Scenario)가 우세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제정치는 기본적으로 반(半) 영구화된 적대감, 고질적 습관, 변화에 저항하는 문화와 제도, 그리고 무정부 상태하에서 국가들의 생존에 대한 집착이라는 거대한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

매일 매일이 변화와 혁신이 지배하는 시장과 과학기술의 영역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느리게 변화는 국가라는 거대한 공룡들의 세계이다. 변화를 예측하고자 하는 미래학이 국제질서의 미래를 예측함에있어 지나친 상상력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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