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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나도 한 때 '중독자'였나

등록 2019.06.07 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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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나도 한 때 '중독자'였나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고백한다. 나는 중독자였다. 당구 중독.

학창시절 수업시간 내내, 잠들기 전까지 내 머릿속은 당구대에서 '쓰리 쿠션' 궤적을 그렸다. 당시 선생님과 부모님의 꾸지람에도 살다시피했던 당구장이다.

이렇듯 온통 당구 생각밖에 없었으니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때의 나는 큰 틀에서 중독자로 분류될 수도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일종의 '중독' 기준에 따르면 이같은 추정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어떨까. 시대상황이 바뀌었을 뿐, 이들도 게임, 인터넷, 쇼핑, SNS, 스마트폰 등 자신들의 기호가 맞는 분야를 찾아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중독 물질로 분류되는 건 오직 '게임'뿐이란 점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WHO는 지난달 25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내용의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결정에 보건복지부와 일부 정신의학계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복지부와 의학계 주장대로 게임은 중독성이 다른 분야에 비해 클 수도 있고, 그로 인한 폐해도 상대적으로 심각할 수 있다. 게임 과몰입의 부정적 측면이 존재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조명할 필요도 있다. 최근 게임은 e스포츠로 발전할 만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할 정도로 복잡해졌다. 게다가 게임산업은 인공지능(AI)·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혁신 기술을 이끈 주역으로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은 75억 달러(약 8조 9145억 원)로 과반(56.6%)에 달한다. 이는 방탄소년단(BTS) 등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6.8%)보다 8배 이상 큰 수치다.

이미 게임은 콘솔, PC, 스마트폰을 넘어 VR, AR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게임사와 협업해 VR, AR 게임을 잇달아 출시하며 산업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이는 이미 게임이 우리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가적 부의 창출은 물론 첨단기술 발전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러다보니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고 건전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하겠지만, 게임 자체에 굉장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 부처간에도 분명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다.


박 장관의 말처럼 게임 과몰입에 대해서는 분명 사회적으로 방비책을 세울 필요는 있다. 또 건전하지 못한 게임에 대한 감시도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 전체를 질병으로 무조건 동일시 하는 판단도 섣부른 측면이 있다.

국제표준질병 분류(ICD-11) 발효 시점은 2022년 1월이다. 우리나라 적용은 빨라야 2026년에 가능하다. 따라서 앞으로 게임업계 등 관련단체에서 게임 과몰입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느냐 여부가 이 논란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과몰입과 게임즐기기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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