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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대미, 대남 비난을 계속하는 이유는

등록 2019.06.28 09:59:38수정 2019.06.28 10: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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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재개 대비 우위 선점하려는 시도

한국 미묘하게 미 입장 지지로 변화 판단

'당분간 중국 믿고 버티겠다' 생각 할 수도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금수산영빈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하는 모습을 21일 보도했다. 두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환담하고 있다. 2019.06.21.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금수산영빈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하는 모습을 21일 보도했다. 두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환담하고 있다. 2019.06.21. (출처=노동신문)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일본 오사카에서 개막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한 핵정세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북한이 연일 대미, 대남 비난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3차 북미정상회담이 임박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를 통한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비핵화 당사자인 북한이 돌연 미국과 한국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적어도 현재의 여건과 분위기라면 비핵화 협상에 나설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미는 비핵화 협상이 곧 재개될 것으로 낙관하고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의지가 있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도무지 맥락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따져보면서 가닥을 정리해보자.

◇북한 외무성의 대미 비난

우선 북한의 대미, 대남 비난부터 짚어보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6일 미국이 '인신매매보고서'와 '국제종교자유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을 헐뜯었고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계속 가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비상사태'를 1년 더 연장했다고 비난했다.

북한 외무성의 이 성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서로에 호감을 표시하는 서한을 교환했다고 양측이 발표한 뒤에 나온 것이다.

특히 김위원장은 트럼프대통령의 친서에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면서 만족을 표시하고 "트럼프대통령의 정치적 판단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최상의 찬사를 밝힌 것으로 북한 언론들이 지난 23일 보도했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에는 이 기사가 아직도 머릿기사로 올라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외무성의 대미 비난 담화가 나온 배경을 가늠해 보자.

우선 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친서에 커다란 호의를 표시했는데도 미국이 여전히 제재를 연장하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비난을 되풀이하자 배신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외무성 담화에는 "조미 수뇌분들(북미 정상)이 아무리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애쓴다고 하여도 대조선 적대감이 골수에 찬 정책작성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 조미관계 개선도, 조선반도비핵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잘해보려고 하지만 미 정책 실무자들이 북한을 적대시하기 때문에 일이 안된다고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결국 북한의 26일자 외무성 담화의 핵심은 바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협상 라인에서 배제하라고 미국에 주문한 것이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 등을 배제하라는 주문을 2월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은 왜 한사코 폼페이오 장관을 배척하려는 것일까.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을 여러 차례 만난 폼페이오 장관이 김위원장이 직접 자신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단지 폐기와 대북 제재 해제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부당했다. 당시 거부를 주도한 사람이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턴 보좌관은 워낙 대북 강경파고 협상 담당자가 아니니까 그렇다쳐도 폼페이오 장관은 여러차례 김위원장을 만났음에도 협상 결렬을 주도했다는 점에 북한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더욱이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앞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강조하는 것은 북한에 아픈 대목이기도 하다. '수령 무오류설'을 중시하는 북한 사회에서 김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 앞에서 '실수'했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것은 사실상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데뷔하는 시점이었다. 또 당시 김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동창리 미사일 시험 발사장을 폐쇄하는 등 미국을 협상으로 이끌기 위해 온갖 유화책을 펴는 시점이기도 했다. 따라서 김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지금과는 달리 미국이 혹할 만한 파격적 제안(검증가능한 완전한 비핵화, 즉 CVID)을 내놓았거나 적어도 그런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북미 핵협상이 원만하게 진전됐다면 김위원장의 '실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김위원장의 '실수'가 국내외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거듭 김위원장의 '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 비난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국장은 27일 담화를 발표해 미국과 한국을 싸잡아 비난했다.

한 페이지 분량 담화의 전반부는 미국에 대한 비난이다. 주목할 대목은 김위원장이 연말까지로 시한을 정해 미국이 입장을 바꾸라고 요구한 것을 부연한 점이다. 아직 시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서둘러 협상을 하자고 채근한 셈이다.

이날 담화는 그러나 미국보다는 한국을 주로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담화문 후반부에 미국과 관계에서 한국은 빠지라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에는 이 담화 기사가 '대외관계' 항목이 아닌 '북남관계' 항목에 담겨 있다. 또 북한 외무성 홈페이지도 28일 오전 현재 26일의 대미 비난 담화는 게재하고 있지만 27일 미국국장의 담화는 게재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정황은 27일 담화의 주대상이 한국임을 시사한다.

북한은 27일 외무성 담화 전날부터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직영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의회 연설을 비난하는 기사를 연일 내보내고 있다. 북한의 다른 대남 매체들도 문대통령을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는 26일자 외무성 담화문을 첫 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또 26일과 28일 "제 얼굴에 침을 뱉지 말아야 한다"는 기사에서 문대통령의 스웨덴 발언을 낱낱이 비난하고 있다. 다른 대남 인터넷 매체인 '메아리'도 28일 "주제넘은 헛소리에 도를 넘은 생색내기"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 기사는 문대통령의 스웨덴 의회 연설이 비핵화와 관련해 조심스럽게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기존 행보에서 벗어나 미국 입장에 다가서고 있다고 북한이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28일자 기사는 문대통령이 "북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대화", "대화의 길로 간다면 누구도 북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 "대북제재가 해제되려면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을 지목해 비난했다. 문대통령 발언이 "우리(북한) 때문에 대화가 진척되지 못하는 듯이 여론을 오도"한다는 것이다.

27일자 외무성 미국 국장 담화에서 한국은 북미 대화에 참견하지 말고 빠지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시진핑 변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북한 방문은 지난 20,21일에 있었다. 직후인 23일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했고 뒤이어 대미, 대남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시주석은 27일 문대통령과 회담에서 김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고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비난에도 대화와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기존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마치 북한의 대미, 대남 비난이 큰 일이 아니라는 듯한 분위기다.

실제로 별일 아닐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북한의 대미 비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나왔으며 대남 비난은 외무성 미국 국장 담화 또는 대남 인터넷 매체 기사를 통해 나오고 있다. 대미 비난을 하고 있지만 그 격이 상대적으로 낮고 대남 비난은 격렬하지만 공식화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면 왜 북한은 이 시점에 대미, 대남 비난에 나선 것일까.

우선 조만간 북미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있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비난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교체, 남측의 협상 관여 배제 등을 요구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 27일자 외무성 담화는 북한이 연말로 제시한 북핵협상 시한이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 서둘러 협상에 나서라고 재촉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둘째로, 북한이 오사카 G20을 계기로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한 국제 여론전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자신들이 참가하지 못하는 국제행사에서 미중, 한중, 한미 회담이 이어지면서 북한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북한이 이른바 '새로운 길'을 새삼 다시 각오하고 있을 수 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 발전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미국과 핵협상이 진전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북중 수교 70년을 기념해 북한을 방문한 시주석을 '황제 의전'으로 대접하고도 북한은 국운이 걸린 핵협상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시주석과 만남을 통해 미국에 크게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핵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제재가 계속되겠지만 중국에 기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말로 중국을 믿을 수 있다고 순진하게 판단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당분간 미국에 강하게 대처할 근거는 마련했다고 보고 미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 조만간 재개될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대미 비난에 나선 것일 수 있다.

시주석 변수는 미중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확정될 전망이다. 중국이 북한 변수를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압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관측은 진작부터 제기돼 있다. 과연 그럴지 오늘 안에 판가름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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