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귀화 "못 웃긴다, 진실되게 상황을 쌓아가지 못하면"
자칭 왕족 출신 도사 '육갑'
영화 '기방도령' 열연
1997년 연극으로 데뷔,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데뷔 23년차 배우 최귀화(41)는 여전히 연기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내가 계속 작품을 하는 이유는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크다. 승부근성이 있다. 연기 욕심이 많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만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부족한 점이 보인다. '기방도령'의 '육갑'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영화를 통해 보니 허점이 많더라. 그런 부분들이 많이 보여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때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동료배우들이 잘 될 때 나도 좀 잘 되고 싶었다. '나는 왜 안 되나'라는 생각을 했다. 쟤네랑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지금은 사실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연기를 잘 하고 싶다. 연기로 최고가 되고 싶다. 유명해지는 것보다 그게 소원이다. '택시운전사' 때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악역이었는데, '길에서 만나면 죽여버릴거야'라는 댓글을 보고 기분이 참 좋았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은 어느 매체든 흔히 쓰이는 역할이다. 쉽게 말하면 흔한 역할이다. 이것을 어떻게 새롭게 보이느냐는 그 배우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들이 자신이 없었다. 노출이 많이 됐던 역할이니까 전형성을 탈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을 많이 했다. 기존의 역할과 중복되도 안 한다. 캐스팅을 안전빵으로 가려는 분들이 많다. 예컨대 육갑을 잘했으면 비슷한 역할로 캐스팅이 또 들어온다. 나는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경우는 거절한다"는 연기 철학이다.
'기방도령'은 폐업 위기의 기방인 '연풍각'을 살리기 위해 도령 '허색'(이준호)이 조선 최초의 남자 기생이 돼 벌이는 코미디다.
육갑은 자칭 고려 왕족 출신의 괴짜 도인 '육갑'이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고려 왕족 후손인 육갑은 신선이 되려는 찰나 우연히 산속을 산책하던 허색과 만나 기방결의를 맺은 뒤 연풍각의 홍보담당 노릇을 톡톡히 한다.
최귀화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코미디적 기질을 극대화하며 극을 '하드 캐리'했지만 사극에는 다시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육갑은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 시나리오 배경은 가을이다. 촬영은 겨울에 했는데, 배경은 가을이다 보니 옷도 얇았고 많이 껴입지도 못했다. 사극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보통 배우들이 사극을 한 번 하고 나면 3년 동안 사극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이번에 해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육체적, 시간적으로 너무 힘들다. 분장만 2시간에 벗겨내는 데 30분 걸린다. 걸어다니기도 힘들고 장소들도 산속, 개울가 등 쉽지 않다."
심지어 코미디 장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영화의 출연은 감독님 영향이 컸다. 시나리오를 읽고 내 취향은 아니라 고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감독님을 뵙게 됐는데, 감독님이 너무 유쾌하고 자상하더라. 말씀도 잘 해서 듣다 보니 믿음이 갔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코미디를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과거에도 중간중간 웃음을 주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사회 고발 영화나 깊이 있는 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배우로서 항상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이번처럼 본격적인 캐릭터 역할을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쯤은 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코미디 연기에도 진지하게 임했다. "웃겨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역할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됐다. 다행스러운 건 코미디 작품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는 점이다. 코미디 호흡은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연극하면서 스스로 테스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같은 대사와 같은 장소인데 어떨 때는 관객들이 웃고, 어떨 때는 웃지 않는다. 사람의 성향도 있지만, '진실되게' 상황을 쌓아가지 못하면 후반에 웃음을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진실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연기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더라? 어느 날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봇대에 단원 모집 글이 있었다.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버스에서 외워서 집에 가서 용기를 내 전화를 했다. 흔쾌히 와보라고 그러더라. 그때 공연장이란 걸 처음 가봤다. 마침 그날 공연을 하더라. 대표님이 1인극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 공연을 관람하게 됐는데, 그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연극이란 걸 처음 봤었다. 10대 후반이었다. 연습생 시절이 꽤 있었다"고 회상했다.
거리를 다녀도 사람들이 아직 못 알아본다는 최귀화는 연출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연출에 대한 꿈이 있다. 아주 나중에 배우를 은퇴했을 때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시나리오를 하나 직접 썼는데, 하겠다는 제작사가 있는데 감독님이 없었다. 그래서 못 들어가고 있었다. 근데 신인 감독님이 자기 데뷔작으로 내 시나리오를 해보겠다고 해서 지금 진행하고 있다. 그 감독님에게 이미 맡겨서, 그 분이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극작가 데뷔를 예고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나는 사실 휴먼극을 좋아한다. 그런 작품들이 사실은 잘 안 나간다. 투자받기 어려우니 잘 쓰지 않고, 그래서 그런 작품들이 갈수록 사라진다. 휴먼인데 새롭기도, 볼거리도 많은 그런 것이 있다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한다. "사실 누구나 알 법한 역할을 만났을 때 멋지게 보여주는 게 멋진건데, 아직 깜냥이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최귀화가 육갑으로 활약한 '기방도령'은 10일 개봉한다.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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