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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증거뿐인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1심서 무죄…사건 다시 미궁으로(종합)

등록 2019.07.11 16: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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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위법수집 증거물과 정황증거로 유죄 인정할 수 없어"

【제주=뉴시스】제주지방법원. (사진=뉴시스DB)

【제주=뉴시스】제주지방법원. (사진=뉴시스DB)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10년 전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박모(50)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사건 발생일로는 10년, 보강된 증거를 토대로 법원의 구속영장이 발부돼 경찰에 체포된 지 7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제주도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인 이 사건은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11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느냐였다.

또 공판과정에서 변호인 측이 제기한 피고인 소유 청바지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절차에 있었던 적법성 여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청바지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이 별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정을 알면서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수색해 얻은 청바지가 형사소송법 308조에서 말하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설령 당시 압수수색 절차에 참여했던 A씨에게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A씨에게는 청바지에 대한 보관자 지위가 없어 경찰의 압수 절차는 결과적으로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청바지에서 검출한 미세섬유 증거 및 그 분석결과는 위법수집증거인 청바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거나 그 변형물 또는 청바지를 기초로 한 2차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 제조과정에서 동시에 여러 종류의 동물털이 사용되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CCTV에 녹화된 택시가 피고인의 차량인지도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이후 무려 6시간이나 지난 후에 제주시 아라동으로 이동해 가방을 유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이번 재판을 통한 소득도 있었다. 재판부는 경찰이 진행한 동물사체실험 결과를 토대로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실종 당일인 2009년 2월1일로 인정했다. 애초 사건 발생 당시 부검의는 피해자의 사체를 발견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사망하였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재수사과정에서 이루어진 동물(돼지·개)을 이용한 실험 및 재감정 결과 사망 후 수일이 지나더라도 사체의 체온이 주변보다 높을 수 있고, 사체가 있던 지형의 특수성 때문에 발생한 이른바 기화열에 의한 냉장효과로 인하여 장기의 부패나 피부건조 등이 지연될 수 있는 점이 밝혀졌다"고 인용했다.

이어 "당시 기상 상황, 피해자의 혈중알콜농도, 위에 남아있던 내용물 등에 대한 분석결과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휴대폰의 최종발신 내역이 남아 있는 2009년 2월1일 오전 3시 8분께부터 2~3시간 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16일 오전 경북 영주시에서 장기 미제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박모(49)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009년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농업용 배수로. 2018.05.16.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지난 2009년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농업용 배수로 모습. 2018.05.16. [email protected]

택시기사였던 박씨는 지난 2009년 2월1일 오전 보육교사인 A(당시 27세·여)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제주시 애월읍의 한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박씨는 지난달 27일 열린 1심 최종 변론에서  "법리적인 것은 잘모른다. 다만 이 사건에 연루돼 형사조사에 응하는 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가족 등 주변인들이 너무나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내가 체포돼 재판을 받는 동안 부모님이 주변의 시선을 피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대목에서는 큰 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기억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갖혀 있으면서 예전 기억을 다시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면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억을 찾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심정보다는 제대로 된 판결과 결정이 이뤄져서 앞으로 나와 우리 가족이 발뻗고 생활할 수 있는 (재판부의)판단이 나기를 기원한다"고 최종변론을 마쳤다.

검찰은 같은 달 13일에 열린 5차 공판에서 “피고인 진술을 토대로 구성한 증거는 없지만 미세섬유와 관련 법의학, 폐쇄회로(CC)TV 영상 등 과학기술로 도출했고,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모든 가정을 세워 수사를 진행했다”며 무기징역과 10년간 신상정보 공개를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날 박씨는 재판을 받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재판장의 최종 선고를 기다렸다. 마침내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박씨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박씨 변호인 측은 재판이 끝난 후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부분들이 재판부에 모두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소 만족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무죄가 선고돼 다행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그 동안 제주교도소에서 구금돼 있었던 박씨는 즉시 석방됐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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