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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편견·장애에 대하여, 눈물샘 자극 음악극 '섬: 1933~2019'

등록 2019.07.18 10: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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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편견·장애에 대하여, 눈물샘 자극 음악극 '섬: 1933~2019'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부분의 교훈극은 쉽고 분명하다.

뮤지컬이 이 장르를 차용할 때, 주역과 앙상블이 한목소리로 여러 번 반복되는 쉬운 멜로디에 감동을 주는 노랫말을 제창한다. 그런데 형식적 구호가 우선시 되는 헛헛함을 가져올 수 있다.

공연창작집단 '목소리 프로젝트'의 2탄 음악극 '섬: 1933~2019'는 이 도식을 넘어 눈부시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1966년부터 40여년간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마리안느 스퇴거(85)와 마가렛 피사렛(84) 수녀의 삶이 중심이라는 소개글에서 처음에는 '그저 착한극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각각 '소록도 천사'와 '소록도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으니 나름 이유있는 선입견이었다.

 그러나 '섬: 1933~2019'는 독립된 3개의 연대를 교차하며 이 예상을 기분 좋게 벗어난다. 우리가 멀게 느끼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편견, 장애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1960년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 한센인들이 강제 이주를 당한 사실과 기록에 근거한 픽션인 1933년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세상과 담을 쌓고 ‘장애도’라는 섬에 갇혀 살아가는 2019년 서울의 발달장애아동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절절한 화음을 이룬다.

각각의 배경에서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들은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한센인들은 천국을 꿈꾸며 소록도를 찾았으나 이곳이 지옥임을 깨닫고, 서울의 발달장애아동의 가족은 이웃뿐 아니라 자신들의 다른 가족들로부터도 함부로 규정당한다.

[리뷰]편견·장애에 대하여, 눈물샘 자극 음악극 '섬: 1933~2019'

하지만 이런 사회의 해체성에 가격 당한 인물들은 '함께'라는 행위와 어깨동무하며 뭉근한 희망을 만들어간다. 불가해한 세상에 거창하지는 않지만 꿋꿋한 긍정으로 맞서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중심으로, 밝음을 향해 한발씩 천천히 나아간다.

연극, 오페라, 무용을 통틀어 올해 가장 눈물샘을 자극하는 공연물이다. 장애인 학교를 거부하는 '님비현상'을 다룬 부분을 비롯, 실감나는 부분이 한 두 장면이 아니다.

30년대의 한센인 '백수선'과 60년대의 '마가렛'을 연기하는 정운선, 마리안느와 2019년의 발달장애아동을 키우는 엄마 '고지선' 역을 맡은 백은혜 등 배우들의 연기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세상에 대한 편견과 환멸을 느낀 관객은 환희를 본다. 세상을 단숨에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무시한, 소외된 것들에 대해 환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끔 충분한 환희가 된다. 누군가의 신음하는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 공연이라고, '섬: 1933~2019'는 증명한다.

올해의 뮤지컬을 우리는 이미 만났다. 박소영 연출,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등이 뭉친 '목소리 프로젝트'는 지난해 우란문화재단과 전태일을 다룬 음악극 '태일'을 1탄으로 선보였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으로 세상을 깊게 들여다보는 젊은 창작진을 성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온다. 음악극 '섬: 1933~2019'는 21일까지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하는데, 티켓은 이미 매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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