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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부·정치권, 박용만 회장의 '쓴소리'에 응답해야

등록 2019.07.17 16: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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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부·정치권, 박용만 회장의 '쓴소리'에 응답해야

【서울=뉴시스】이종희 기자 =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잇따른 쓴소리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여야정 모두 경제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위기라고 말을 꺼내면 듣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억장이 무너진다"며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작업까지 해가면서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 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고 일갈했다.

이어 "우리는 기반 과학도 모자라는 데다 신산업은 규제의 정글 속에 갇히다 보니 일을 시작하고 벌이는 자체가 큰 성취일 정도의 코미디 상황"이라며 "어쩌라는 것입니까?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붙들어 줄 것은 붙들고, 놓아줄 것은 놓아줄 때가 아닙니까"라고 강한 어조로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했다.

16일에는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국회를 찾아 "규제 정글에서도 일을 시작하고 벌이려는 젊은 기업인들이 있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덫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이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청년들의 생존을 위한 읍소를 들어주시고 '개점 휴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속한 입법과 함께 담당 공무원을 움직일 수 있는 인센티브도 제공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소통 경영'으로 정평이 나 있는 대표적인 재계 인사다. 평소 IT에 관심이 많아 '얼리어답터'로 유명한 그는 초창기부터 SNS를 통해 임직원뿐만 아니라 대중들과도 직접 소통을 하곤 했다. 이같이 소탈한 그의 모습은 멀게만 느껴졌던 재계 총수와 대중과의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한상의는 재계와 정부 사이를 잇는 대표적인 창구가 됐다. 다음달 취임 6주년을 앞둔 박 회장은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경제사절단 대표 자격으로 여러 차례 동행해왔다.

또 정부와 청와대, 여야 고위관계자와 만나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원활히 수행해왔으며,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도 참석했다.

재계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자처해왔던 그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잇단 쓴소리를 하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래도 우리 경제에 위험 신호가 여러 차례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답답한 행보를 보이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필수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국내 산업이 마비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온 전통 제조업이 위기를 맞는 사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좌지우지할 신산업은 고사 직전이다. 기존 산업의 혁신을 불러일으킬 스타트업들은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고 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대한상의 회장이라도 대기업 오너가인만큼 그런 그가 직접 나서 정부에 대해 작심하고 비판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박 회장도 고심을 거듭한 끝에 입을 연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박 회장은 그동안 국회에 12번 방문하고 규제 개혁 과제를 발굴해 20여 차례 전달하는 등 노력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여러 차례 토로한 바 있다. 박 회장의 절박한 호소에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형국이다.

물론 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 기조가 대한상의 회장의 한 마디에 확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고심 끝에 내놓은 언급이란 점을 감안하면 정부와 정치권 모두 그의 말대로 한국 경제의 현실을 냉철히 돌아봐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오죽했으면 기업인 출신이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했겠는가' 하는 점도 더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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