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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60년 ‘성심원 산마루에 애기똥풀꽃이 지천이다’

등록 2019.07.18 1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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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들의 고향’ 산청성심원 개원 60주년

한센인들 참여한 사진집

명동성당 갤러리 1898 전시회도

1958년 구생원에서 19명의 신자들이 첫번째 세례를 받고난 뒤 성심원 설립자인 주 꼰스탄시오(맨 앞줄 왼쪽 두번째) 신부와 기념촬영 하고 있다.

1958년 구생원에서 19명의 신자들이 첫번째 세례를 받고난 뒤 성심원 설립자인 주 꼰스탄시오(맨 앞줄 왼쪽 두번째) 신부와 기념촬영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74년 제3대 교황대사인 루이지 도세나 대주교 방문. 왼쪽은 이재환 라파엘 수사

1974년 제3대 교황대사인 루이지 도세나 대주교 방문. 왼쪽은 이재환 라파엘 수사


성지주일 행렬

성지주일 행렬


1974년 김수환(가운데) 추기경 방문

1974년 김수환(가운데) 추기경 방문


1960년대 남자 환자들

1960년대 남자 환자들

‘한센인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경남 산청 성심원이 개원 60주년 기념 사진집 ‘성심원 산마루에 애기똥풀꽃이 지천이다’를 펴냈다.

1963년 예수부활대축일에 완공된 성심보육원. 3, 4세부터 6세까지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격리돼 생활했다.

1963년 예수부활대축일에 완공된 성심보육원. 3, 4세부터 6세까지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격리돼 생활했다.

산청 성심원은 소록도 병원과 함께 한센인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중요한 시설이다. 오랜 세월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은 환자들을 가족과 떨어뜨리고 사회로부터 소외시켰다.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성심원에 들어온 이들이 모여 서로 상처를 닦아주고 보듬어주며 가족으로 살게 됐다.

 한때 600명이 넘는 한센인을 수용하는 대규모 시설이던 성심원에 지금은 약 100여명의 환자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 

1959년 6월18일 첫 미사로 시작한 천막성당 시절. 6월18일은 성심원의 설립기념일이 됐다.

1959년 6월18일 첫 미사로 시작한 천막성당 시절. 6월18일은 성심원의 설립기념일이 됐다.


1959년 6월 19일 설립 이래 60년동안 성심원이 한센인들과 함께 걸어온 발자취를 담았다. 존엄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한센인들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따뜻한 모습으로 기억하게 하고 성심원 60년사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기획한 책이다.

현재의 산청 성심원을 기록하기 위해 2018년 9월부터 여덟 달에 걸쳐 ‘행복사진관’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전문 사진가 그룹의 도움으로 성심원에서 생활하는 한센인들이 직접 카메라를 익히고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책은 ‘행복사진관’ 프로젝트의 결실과 60년 산청 성심원 역사의 기록, 한센인들의 수기·구술·시 등을 수록했다.

천막성당 시절의 수녀와 어린이들

천막성당 시절의 수녀와 어린이들

30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갤러리 1898 제3전시실에서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수도회) 주최로 개원 60주년 기념 사진전도 열린다.

성심원 설립자 주 꼰스탄시오 신부

성심원 설립자 주 꼰스탄시오 신부

316쪽, 2만원, 알렙


유의배 주임신부와 노인들

유의배 주임신부와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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