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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주변, 백제고분 41기 더 있다···공주 송산리

등록 2019.07.17 18: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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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주변, 백제고분 41기 더 있다···공주 송산리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사적 제13호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고분 41기가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중장기 학술조사 계획 수립을 위해 지난 2~3월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를 했다. 이어 4월 고고학 지표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 가능성이 확인됐다.

신라, 가야와 달리 백제는 지하에 매장시설을 두고 봉분을 크지 않게 조성했기 때문에 지표면에서 고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봉분, 석재 등 고분의 흔적, 입지특성, 지형분석를 통해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1~4호분 정비구간에서 확인된 일제강점기 조사 고분의 지하 흔적

공주 송산리고분군 1~4호분 정비구간에서 확인된 일제강점기 조사 고분의 지하 흔적


6월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의 지하물리탐사를 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이후 위치를 알 수 없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도 파악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고분의 위치를 표시한 사진자료와 현재 촬영한 사진자료를 비교하고 검토해 확보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이 고분들의 현 위치를 추정했다.
 
무령왕릉 서벽 창문모양 장식에 사용된 ‘중방(中方)’명 벽돌(왼쪽)과 이번 조사에서 수습한 ‘중방’명 벽돌(오른쪽)

무령왕릉 서벽 창문모양 장식에 사용된 ‘중방(中方)’명 벽돌(왼쪽)과 이번 조사에서 수습한 ‘중방’명 벽돌(오른쪽)


조사과정에서 지표면에서 수습된 ‘중방(中方)’명 벽돌도 주목할 만하다. 무령왕릉과 6호분은 틀로 찍어낸 소성(燒成)벽돌을 쌓아 터널형태 무덤방을 만들었다. 아치형 구조 시공을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벽돌이 제작됐다. 대부분 동전과 연꽃 등 장식용 문양을 넣었다.

문양이 없는 대신 대방(大方), 중방, 중(中), 급사(急使) 등 글자를 압출(壓出)한 벽돌들도 일부 확인됐다. 이 글씨들은 벽돌이 사용된 위치 등 쓰임새를 뜻한다.
 
 무령왕릉에 사용된 벽돌 7927점 중 '중방'명 벽돌은 30점뿐이다. 벽돌 크기와 글자 위치로 볼 때, 이번 수습품은 긴 벽면에서 창문모양을 장식한 8점과 비슷하다. 

이번에 수습된 벽돌이 나온 곳은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에서 남쪽으로 80m 떨어진 지점이다.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벽돌무덤인 17호분의 추정 위치와도 70m 이상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벽돌이 발견된 일대에 또 다른 벽돌무덤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1933년 가루베가 일본 '고고학잡지(23-9호)'에 게재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전경과 위치

1933년 가루베가 일본 '고고학잡지(23-9호)'에 게재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전경과 위치


 이 지역의 백제 왕릉 존재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이미 나와 있다. 발굴조사는 1927~1933년 가루베 지온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처음 했다. 당시 총 29기가 보고됐다.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진 벽돌무덤(6호분)과 돌방무덤(1~5·7~8·29호) 8기의 발굴기록 만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번에 추가로 발견한 고분 41기가 일제강점기 때 보고된 29기와 얼마나 중복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번 조사를 통해 기록상에만 남아있던 고분들의 위치를 추가로 대거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

연구소는 2020년부터 추정 고분들에 대한 본격 조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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