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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법원, 엘모소테 학살사건 군지휘관 13명 기소

등록 2019.07.19 07: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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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내전중 주민 1천명 몰살

군부 13명 살인 ·고문혐의 추가기소

【엘모소테( 엘 살바도르)=AP/뉴시스】 1981년 엘모소테에서 일어난 정부군의 마을주민 학살사건 희생자 유해가 묻힌 집단매장터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온 법의학 팀의 클라우디아 베르나르드 박사가 1992년 유골을 검사하고 있다. 

【엘모소테( 엘 살바도르)=AP/뉴시스】 1981년 엘모소테에서 일어난 정부군의 마을주민 학살사건 희생자 유해가 묻힌 집단매장터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온 법의학 팀의 클라우디아 베르나르드 박사가 1992년 유골을 검사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차미례 기자 = 엘살바도르의 법원이 1981년 정부군의 엘 모소테( El Mozote)마을 학살사건의 주범인 전 지휘관들 13명을 살인과 고문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이들은 당시 군부대를 지휘했던 17명 가운데 아직 처벌받지 않은 지휘관출신 들이다.

수도 엘살바도르 북동쪽의 산 프란치스코 고테라에 있는 법원의 재판부는 이번에 법정에 세워진 13명 역시 내전 당시에 고문, 살인, 강제 실종과 추방등 만행을 저질렀던 주범들이라고 단정했다.

'엘 모소테학살사건'으로 전 세게에 악명을 떨친 그 사건은 1981년 12월 10일에서 12일 사이에 엘살바도르 모라산(Morazán) 주 엘 모소테(El Mozote) 마을에서 정부군이 주로 농부들인 민간인 989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희생자 가운데에는 477명의 아이들도 포함되었다.

1980년 당시 엘살바도르에서는 군사 정권과 반군인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간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정부군이 마을 주민들이 반군과 내통하고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구실로 주민 전체를 몰살시켰다.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까지도 화를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정부군은 라틴아메리카 군인들을 양성하는 ‘미주 미 육군학교(SOA)’ 출신 군인들로 구성된 ‘아틀라카틀 대대(Batallón Atlácatl)’였다.

이 번에 추가로 기소된 군인출신들 가운데에는 호세 기예르모 가르시아 전 국방장관,  전 살바도르군 총사령관 라파엘 플로레스 리마 장군, 전 공군사령관 후안 라파엘 부스티요 등 장성들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정부군은 마을주민 전체를 광장에 소집하고 반군의 정보를 얻기 위해 심문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2월 11~12일 이틀 동안 이들을 교회와 수도원 등에 수용한 후 고문과 학살을 자행했다. 아기들부터 노인들까지 전부 사살하고 불을 질러 마을 전체를 파괴했다.
【산살바도르( 엘살바도르)= AP/뉴시스】 올해 3월 12일 취임한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그는 1980~1992년 내전 당시 정부군에게 희생된 유가족들의 제소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가 명령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지시했다. 현재 전 군부 장성등 군지휘관 출신들에 대한 후속 재판과 기소가 이뤄지고 있다. 

【산살바도르( 엘살바도르)= AP/뉴시스】 올해 3월 12일 취임한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그는 1980~1992년 내전 당시 정부군에게 희생된 유가족들의 제소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가 명령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지시했다.  현재 전 군부 장성등 군지휘관 출신들에 대한 후속 재판과 기소가 이뤄지고 있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 학살사건은 1982년 1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가 최초로 보도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엘살바도르 정부는 이를 부인했고, 미국 행정부와 대사관도 과장된 보도라고 주장했다.

이 학살사건은 1992년 유엔 주도 아래 내전 종식을 위한 협상 과정 중 양측에서 책임 면책권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2012년 마우리시오 푸네스(Mauricio Funes) 대통령은 내전종식 평화협정 체결의 20주년 기념 추도사에서 엘 모소테 학살 사건에 대한 정부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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