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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집을 찾아 헤맨 시인, 정철훈 '백석을 찾아서'

등록 2019.07.21 11: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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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집을 찾아 헤맨 시인, 정철훈 '백석을 찾아서'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백석(1912∼1996)은 월북한 천재시인으로 꼽힌다. 김소월(1902~1934)과 함께 민중의 상처를 보듬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정철훈씨가 꼼꼼한 고증을 통해 '백석을 찾아서'를 냈다.

백석은 1912년 7월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수원 백씨 시박과 단양 이씨 봉우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학과 영어에 소질을 보인다. 하지만 오산고보를 나오고서 집안 사정으로 진학하지 못한다. 고향에서 책을 읽으며 소일한다.

그러다가 1929년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 선발 시험에 붙는다. 일본의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 사범학과에 들어가고, 열아홉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등단작은 시가 아니라 '그 모(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 졸업과 함께 교원 검정시험에 합격한다. 귀국하고 바로 조선일보에 입사해 계열 잡지 '여성'의 편집을 맡는다. 이후 1936년 조선일보를 사직한 그는 함흥 영생고보의 교사로 임용돼 서울을 떠난다.

정 시인은 이때부터 북방에 대한 백석의 향수와 동경을 포착하고, 백석의 내면세계와 전기적 사실을 연동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백석 탄생 100주년이 지난 어느 날 백석을 찾아 장춘으로 향한다. 그의 발걸음은 장춘과 신경, 심양을 거쳐 새벽의 단둥 호텔에서 건너편의 신의주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더 이상 북방에서의 백석의 자취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적 제약이 이 책의 시작이다. 시적이고 쓸쓸한 문체로 북한에서의 백석의 삶을 한 행 한 행 채웠다.

"백석이 만주 체험을 통해 창작한 시편들은 그의 문학적 생애에서 절정기라고 할 만큼 성취도가 높을 뿐 아니라, 이전의 시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첫 시집 '사슴'(1936)이 토속적 가족공동체를 근간으로 한 심상의 유토피아를 그려냈다면 '만주 시편'은 대륙을 떠도는 자의 고독한 내면과 인간의 페이소스를 더욱 심화해 보여준다. 백석의 만주행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면밀하게 계획된 자아실현의 결단이다. 그는 만주 체류를 통해 러시아어를 완벽에 가깝게 마스터한다. 해방 직후 만주에서 평양으로 귀환한 그가 시 창작을 거의 작파하고 러시아 문학 번역으로 선회했다는 사실은 만주 체류 목적이 러시아어 습득에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백석을 찾는 문학 탐사가 주를 이룬다. 백석은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부터 만주행을 계획했지만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단둥 방문을 계기로 바뀐다. 1940년 1월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 벌판에서 시 백 편을 가지고 오겠다고 다짐하고 만주로 떠났다. 러시아어 습득에 대한 열정과 관북 기질의 북방적 상상력으로 신경으로 떠나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통역 일을 했다. 객지의 비감과 고독 속에서 백석은 진정한 자신과 맞대결을 한다. '언어의 집'을 찾아 헤맸고 만주의 조선인들의 피폐한 상황들을 보고 겪는다.

영어와 일본어, 러시아어 등을 구사하면서도 관북 사투리를 중심으로 시를 썼다. 식민지 시대 일본어 사용의 전면화에 대해 한국어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을 했던, 아름답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었다. 시집 '사슴'은 방언의 희소가치와 상고 지향을 알리고 신비와 속신, 시원의 힘과 기억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백석의 시적 고민과 비애, 의식을 따라간다. 식민지 조선인들의 만주에서의 피폐한 생활과 문학인들의 상황, 동아시아의 비극을 짊어져야 했던 백석의 삶을 느낄 수 있다. 496쪽, 2만5000원,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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