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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기훈 “이제, 시작입니다”···세계가 탐내는 핫 바리톤

등록 2019.08.26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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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콩쿠르,

오페랄리아 2019,

잇따라 콩쿠르 2위

ⓒ아트앤아티스트

ⓒ아트앤아티스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성악가 중에서도 바리톤과 만남을 앞두면 자세를 더 고치게 된다. 웅숭깊은 저음으로 인해 젊어도 어른스러울 것 같은 직감 때문이다.

최근 ‘제16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오페랄리아 2019’ 등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 2개에서 잇따라 2위를 차지한 바리톤 김기훈(27)과 만남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유명한 대회에서 연속으로 2등을 차지한 것도 물론 대단하지만 충분히 1등을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아쉬움에 사색의 깊이가 더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예상도 있었다.
 
막상 만난 김기훈에게서는 앳됨과 순수 그리고 낙천의 조각이 떠올랐다. 성악가는 예민하다는 편견도 기분 좋게 산산조각냈다.

“성격이 낙천적이라 스트레스를 잘 안 받아요. 금방, 잊어버리죠. 제가 특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분들과 똑같은 일이죠.”

평소 김기훈이 많이 받는 질문 중 난감해하는 것 중 하나가 ‘목소리 관리를 어떻게 하냐’는 것. “평소 똑같이 하거든요. 컨디션이 좋든, 좋지 않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두고 핑계를 대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징크스도 사서 만들지 않아요. 성악가는 왜 예민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요. 예민하려면 그 당위성이 충분해야죠.”

연세대 음악대학을 수석 졸업한 김기훈은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를 만장일치 만점으로 졸업했다. 현재 동대학 최고연주자과정을 밟고 있다. 2015 서울국제콩쿠르 우승, 2016 뤼벡마리팀 성악콩쿠르 우승과 청중상 등을 거머쥐었다. 2016년부터 독일 하노버 슈타츠오퍼 솔리스트로 활약했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동네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다 고교 3학년 때 성악에 입문했다. 서울국제콩쿠르 우승 전까지는 국내에서만 공부했다.

처음 노래를 하겠다고 하자, 몇몇은 ‘이제 와서 무슨 성악을 시작하냐’며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기훈이 상을 받기 시작하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김기훈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성악을 급하게 시작하다보니 기초보다 재능에 기댄 부분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쉽게 흔들렸다고 돌아봤다. 위험한 순간도 찾아왔고 포기하려 한 순간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들을 쉽게 포기하기도 힘들었다.

우선 부담을 덜고자, 대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입대를 결정했다. 한창 유망주로 떠오를 때이고 20대초반은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시기여서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김기훈은 “대한민국 남자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며 입대를 했다.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기 위해 입시에서도 정공법을 택한 김기훈이다. 비교적 입학이 수월한 ‘농어촌특별전형’으로 지원을 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처럼 일반전형으로 음대에 지원을 한 것이다.

군악대도 아닌 일단 보병을 지원했다. 군대 생활은 즐겁게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부친의 말씀을 되새겼다. 뭐든 지 열심히 하고 목소리도 큰 그를 간부들은 조교로 점찍었다. 그런데 연대 성악과 재학 중인 보병이 있다는 소문이 군악대까지 전해지면서 군악대에서도 김기훈을 탐냈다.
[인터뷰]김기훈 “이제, 시작입니다”···세계가 탐내는 핫 바리톤


결국 군악대에 발탁, 튜바를 불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튜바를 개량해 주로 행진곡 등에서 사용하는 수자폰을 불었다. 무게만 15㎏에 달하는 이 악기를 하루에 10시간가량 들고 다니며 배웠다. 고향에서 배운 사물놀이도 유용했다.
 
하지만 전역할 때즘 성대 결절이 찾아왔다. 학교에 복학했는데 예전만큼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여전하다”고 했지만 본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이후 자신이 집요하게 고집하던 것을 모두 내려놓았다. 백지 상태에서 가르침을 맞이하고 마음을 다잡으니 좋은 결과들이 찾아왔다.

김기훈은 어릴 때 빨리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차근차근 나이에 맞는 역을 하면서 제대로 무르익어가고 싶다.

김기훈이 가장 맡고 싶어하는 역 중 하나는 푸치니 오페아 ‘토스카’에서 토스카를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스카르피아 남작, 악역이다.

“예전에는 악역 연기를 싫어했어요. 지금은 멋지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배역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유연한 ‘21세기 성악가’였다.

김기훈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유망주다. 2019/20 시즌부터 프리랜서로 활동을 예고했는데 이미 세계 각지에서 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9월 독일 로스톡 극장에 ‘라 트라비아타’로 데뷔한다. 내년 3월에는 영국 글라인본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사랑의 묘약’을 공연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가 무엇인지 물었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 ‘실례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을 꼽았다.

“안녕하세요, 바리톤 김기훈입니다!”라는 뉘앙스를 담고 싶다고 했다. 이제 세계 오페라 신에서 자신을 다시 제대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느낌이란다. 이 젊은 바리톤은 언제나 초심을 다지고 있다. “이제 새로운 극장,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될 거예요. 콩쿠르 덕에 국내 클래식 애호가 분들에게도 인사할 자리가 많을 것 같고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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