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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원흉 서울대에 가습기 센터?…피해자 생각 않나"[인터뷰]

등록 2019.08.3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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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넷 전 공동위원장 김기태 변호사 인터뷰

시민사회단체 모임 '가습기넷'서 1년 넘게 활동

"특조위, 초기 피해자 인정 기준 변경 힘썼어야"

"피해자 원하는대로 해결돼야…얘기 들을 필요"

"서울대에 가습기살균제연구센터 추진은 불통"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전 공동운영위원장인 김기태 변호사가 지난 29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8.29.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전 공동운영위원장인 김기태 변호사가 지난 29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2011년 봄이었다. 산모 4명이 폐질환으로 숨을 거뒀다. 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 결과 폐질환 원인을 '가습기살균제'로 추정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8년이 흘렀다. 지난 23일 기준 총 6905명이 환경사업기술원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신청했다. 그중 사망자는 1431명이다. 올해 7월26일 기준 환경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835명이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수사 전담팀을 꾸린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총 34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시민사회연대체로 피해자 곁에 있었다. 가습기넷은 2016년 6월 환경·시민·소비자 단체 200여개가 모여 만든 연대체다. 옥시레킷벤키지(옥시) 불매 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검찰 불기소 처분을 받은 SK케미칼·애경 등 전현직 임원을 다시 고발하기도 했다.

김기태(45)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가습기넷에서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1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각종 기자회견, 고발장 접수, 1인 시위 등 피해자들이 필요한 현장에 나타났다.

이틀 간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마무리된 다음날인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KTK아카데미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번 청문회는 물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해결을 위해 갈길이 멀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부실했습니다. (특조위 측이) 준비가 덜 된 것 같았어요."

청문회에 대해 묻자 김 변호사가 말했다.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는 취지였다.
 
"군 부대 내 가습기살균제가 사용됐고 LG생활건강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인 BKC(염화벤잘코늄)가 호흡기 계통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습니다. 특히 LG생활건강 가습기살균제를 단독으로 쓴 사람은 단 2명입니다. 그마저도 누군지 찾지를 못했어요. 그마저도 공소시효가 지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특조위가 검찰 수사 결과 보고서를 받았을 텐데 이를 기반으로 기업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도 없었고요."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처음 언론에 알려졌을 뿐 환경부가 이미 계획하고 실시하려고 했던 안"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청문회 첫날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와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이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언론 보도 표현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김기태 변호사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시절인 2018년 10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빌딩 앞에서 살균제 제조사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게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김기태 변호사 제공)

【서울=뉴시스】 김기태 변호사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시절인 2018년 10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빌딩 앞에서 살균제 제조사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게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김기태 변호사 제공)

"제가 누군가의 얼굴을 때려서 이가 부러졌다고 해봅시다. 그 상황에서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사과한건가요? 부러진 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사과한 겁니다. 그날 기업 관계자들이 한 사과는 개인적 사과일 뿐입니다. 모든 피해자 앞에서 전현직 대표가 나와 사과의 말과 함께 보상과 향후 대책을 밝혀야 '공식사과'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청문회를 연 특조위에 대해서도 강공 발언을 이어갔다. 김 변호사는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지난 6월 피해자들과 함께 특조위 규탄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특조위는 출범하자마자 '피해자 찾기'에 골몰했어요.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아무리 더 많은 피해자를 찾아도 기존 판정 기준 때문에 정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피해자 판정기준 완화, 피해단계 폐지 등에 먼저 힘쓴 뒤 추가 피해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진상규명 첫번째 단계인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고인들의 재판 모니터링도 지난 6월 가습기넷이 비판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특조위가 피해자들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야한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결돼야 합니다. 특조위는 피해자들이 뭘 원하는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의견을 들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불통'입니다. 특조위가 서울대 내 가습기살균제 연구센터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학계 차원에서 서울대는 이번 참사의 '원흉'입니다. 이곳에 센터를 만드는 것이 피해자들이 원하는 일일까요? 특조위 활동이 후반기에 접어든만큼 이제는 더 많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해선 풀 숙제가 많다고 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책 마련부터 기업 처벌까지 모두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인정하는 피해자가 돼도 치료비 일부만 지원받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별도의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법부는 환경부 판단과는 별도로 개별적으로 피해자들의 질환과 가습기살균제 사용(노출) 간 인과관계를 판단합니다. 환경부 등 정부 차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질환 간 인과관계 등을 입증할 수 있는 공식자료를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소송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어요. 또 정부가 가습기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반적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기 위해 징벌적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도 도입이 필수적이고요."

미국 변호사 시험 지원자들을 교육하는 기관을 운영 중인 김 변호사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사건개요, 건강피해 인정 절차, 피해구제 대상질환의 단계적 확대계획안 등이 담긴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그는 "피해자들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내 아이나 가족이 피해자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 활동했어요"라며 "공동운영위원장이 아니라도 계속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데 도움을 줄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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