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초고령사회가 온다]스웨덴 노인돌봄 주연은 기초지자체…중앙정부는 감독만

등록 2019.09.07 09: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스웨덴, 1992년 에델개혁 후 지자체에 권한 대폭 이양

기초지자체 코뮨, 노인돌봄 관련 정책 주도적 운영해

기초지자체 법상 범위 넘길 때 중앙정부 사후적 개입

[초고령사회가 온다]스웨덴 노인돌봄 주연은 기초지자체…중앙정부는 감독만

【스톡홀름=뉴시스】박대로 기자 = 초고령사회를 비롯해 복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문제는 현금성 복지 논란이다. 서울 중구가 올해부터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수령자 1만1000여명에게 매달 10만원씩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급하면서 '복지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중앙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과 중복된다며 중구 어르신 공로수당에 제동을 걸려하고 있다.

이 사안은 전국에 파장을 일으켰다. 중구를 제외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현금성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펼 경우 국가와 지자체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며 중구를 성토했다. 무분별한 현금복지 정책을 막겠다며 전국 기초지자체들이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본질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노인복지 정책 주도권이 중앙정부에 있느냐, 지방자치단체에 있느냐다. 나아가 이 문제는 지방분권, 특히 재정분권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얽혀 있다.

지난달 25~29일 뉴시스 창립 18주년 특집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스웨덴은 이 문제를 1990년대에 일찌감치 풀었다. 재정과 권한을 과감하게 지자체에 이양함으로써 노인복지 수준을 높였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스웨덴 고령자복지제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에델 개혁(Ädel reform)은 1992년 1월에 시행됐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치매나 질병, 장애를 가진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의료재정이 위협을 받았다. 이에 스웨덴은 노인의료비 급증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고령자 간호의 질적 향상과 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개혁을 단행했다.
【스톡홀름=뉴시스】 지난달 28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모습. 2019.**** daero@newsis.com

【스톡홀름=뉴시스】 박대로 기자= 지난달 28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모습. 사람들이 강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9.09.07. [email protected]

에델개혁 전에는 광역자치단체인 란드스팅(landsting)이 고령자 의료를, 기초지자체인 코뮨(commune)이 고령자 복지서비스를 담당했다. 하지만 이 경계가 불분명한 탓에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스웨덴은 고령자와 장애인 대상 복지서비스를 전면적으로 코뮨으로 이관했다. 란드스팅이 담당했던 고령자 재택간호 서비스와 장기요양간호가 코뮨으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장기요양간호, 재택간호, 초기의료 등이 코뮨 관할로 일원화됐다.

이후 역할분담이 명확해졌다. 코뮨은 보육, 학교교육, 고령자복지, 장애인복지 등 사회서비스를 비롯해 생활보호급부, 도시계획, 폐기물 처리 등 업무를 관할하게 됐다. 란드스팅은 사회서비스 중 의료와 문화활동, 대중교통을 맡았다. 중앙정부는 연금 등 현금에 의한 사회보험급부를 맡았다. 또 란드스팅과 코뮨이 법을 어기지 않는지 감독한다.

스웨덴은 지자체에 복지 관련 재정권한도 대폭 이양했다. 코뮨은 행정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코뮨세라는 지방소득세로 조달하며 세율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코뮨 1년 예산 중 7할 이상이 지방소득세로 충당될 정도로 재정분권이 이뤄져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세입구조가 8대2인 우리와는 정반대다.
【스톡홀름=뉴시스】 지난달 28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모습. 2019.**** daero@newsis.com

【스톡홀름=뉴시스】 박대로 기자= 지난달 28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모습. 2019.09.07. [email protected]

스웨덴 코뮨의 행정은 주로 지방소득세와 서비스 이용자의 자기부담으로 운영된다. 재정수지 균형이 무너지면 각 지자체 판단으로 지방소득세 세율을 변경할 수 있다. 재정적자가 발생했을 때 코뮨 스스로 2년 내에 재정을 건전화해야 한다.

코뮨이 자율성을 갖고 있는 탓에 노인복지서비스의 경우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같은 정도의 장기요양이 필요한 고령자라도 거주하는 코뮨이 다르면 제공받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 경우 중앙정부가 적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개입한다. 정부는 해당 코뮨이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코뮨이 주민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자기부담액을 부과하진 않는지를 감독한다.

군나르 안데르손(Gunnar Andersson) 스톡홀름대학교 인구통계학과 교수는 "지자체는 그들이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에 있어서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자율성의 범위에 제한이 있다"며 "지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수당을 지급한다거나 하면 제한이 된다"고 설명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기초지자체마다 복지수준에 차이가 나거나 좀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고령자가 어디 거주하느냐에 따라 너무 큰 차이가 생기면 안 된다"며 "지자체가 제한된 범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개입한다"고 덧붙였다.
【스톡홀름=뉴시스】 지난달 29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모습. 2019.**** daero@newsis.com

【스톡홀름=뉴시스】박대로 기자= 지난달 29일 밤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야경. 2019.09.07. [email protected]

야콥 할그렌(Jakob Hallgren) 주한 스웨덴대사도 "기초지자체는 과세 면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갖지만 집행과 실행 과정에서는 국법을 따라야 한다. 실제 집행에서는 국가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초지자체가 주도적으로 노인복지정책을 펴고 중앙정부가 사후감독에 나서는 체계는 스웨덴 노인복지 수준을 향상시켰다. 스웨덴 현지에서 이를 실감한 이들은 이 같은 제도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규 주스웨덴 한국대사는 "스웨덴 복지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적용돼 있다. 복지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책임도 같이 지는 원칙이 적용되니 다 협조하게 되어 있다"며 "지자체가 과세권을 갖지만 그만큼 책임도 뒤따른다. 자기 주민의 복지에 관한 문제니 지방자치 의회에서 감시를 하고 잘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각 지자체가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과 복지를 위해서 책임을 갖고 운영하는 시스템,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