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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치 일정 따라가면 초고령사회 대응 골든타임 놓친다

등록 2019.09.0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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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치 일정 따라가면 초고령사회 대응 골든타임 놓친다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지난달 25~29일 스웨덴 현지에서 뉴시스 창사 18주년 특집을 위해 초고령사회 복지 현황을 취재했다. 현지에서 취재를 할수록 스웨덴과는 판이한 우리의 현실이 떠오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취재를 하는 동안 가장 놀랐던 점은 스웨덴 역시 그간 고령자와 관련해 적잖은 문제들을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고령자를 위한 복지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이지만 200여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고 한다. 농촌에서 살던 스웨덴 고령자는 기운이 빠져 은퇴를 하면 자식들과 떨어진 채 외딴 집에서 외롭게 여생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설화에 등장하는 '고려장(高麗葬)'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상당기간 유지했던 스웨덴이지만 지금은 고령자 복지를 상징하는 나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스웨덴은 수차례 위기를 경험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에 휩쓸렸던 스웨덴은 자국통화 절하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강화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1990년대 금융자유화에 따른 거품경제 붕괴 때는 세제개혁과 복지개혁, 연금개혁을 통해 새 판을 짰다. 2007~2008년 리먼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때는 사양산업 구제금지와 구조조정 권장, 실업자 재교육·재취업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우리가 배울 것은 스웨덴이 위기 때마다 실행했던 세세한 정책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위기 때 스웨덴 지도층이 보여준 책임지려는 태도, 그리고 지도층이 도출한 합의를 지키려는 사회 전체 분위기다.

스웨덴 역대 집권당은 상황 변화와 책임을 인정하고 야권에 협력을 구했으며 야권과 시민사회는 대안 마련에 협조했다. 그리고 여야와 각계각층이 함께 마련한 합의는 이후 결정적인 상황 변동이 없는 한 유지되고 존중 받았다. 그 결과 스웨덴은 '스웨덴 모델'이라는 지금의 체제를 만들 수 있었다.

스웨덴 취재를 마치면서 우리 현실을 떠올렸다. 우리 역시 이미 많은 위기를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예정인데 과연 우리는 그 위기상황을 스웨덴처럼 잘 극복하고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현재 우리 상황은 암울하다. 10개월간 국민연금 개편 방안을 논의해온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개혁특위가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지난달 30일 공을 국회로 넘겼다. 하지만 국회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간 치열한 공방 탓에 국민연금 개혁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게다가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열리고, 총선으로부터 2년 뒤인 2022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여든 야든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부담스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 뻔하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까지는 약 6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선과 대선으로 인한 공백을 감안하면 실제로 국민연금 제도를 고칠 시간은 길어야 3~4년뿐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청사진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정치 일정과 국민연금 개혁을 연결하기 시작하면 적기에 해법을 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므로 정치적 시간표를 뛰어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혁 추진이라는 결단을 할 경우 당장은 반발에 직면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한 용단으로 인정 받을 것이다. 국회 역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서 당파적 접근으로 일관한다면 스웨덴과 같은 성공적인 복지국가로 가는 문은 가차 없이 닫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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