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동선언 1년]'9월 평양' 후 멈춘 비핵화 시계…중대 기로 선 文
등록 2019.09.18 06:00:00
北 최선희 담화에 정세 요동…트럼프 '볼턴 경질' 실무협상 화답
평양선언 이후 비핵화 제자리…文, 유엔총회 참석해 '평화 역설'
북미 前 한미 정상회담 '비핵화 구상' 공유…북미 접점 모색 관건
11월 한·아세안 계기 김정은 답방 관심…靑 "두 개는 별개 문제"
【뉴욕=뉴시스】지난해 제73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8.09.27.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되면서 결과적으로는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한반도 '비핵화 시계'는 멈춰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6월 판문점 남북미 3자 회동이 성사됐지만 실질 합의는 없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곧 재개될 것이라는 점만 확인 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기점으로 당사국인 남북미 3국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최 부상이 '9월 하순'이라는 시한을 못 박아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공식 선언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다.
최 부상은 지난 9일 담화를 통해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 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며 비핵화 실무 협상 재개를 공식화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북한은 그동안 꾸준히 볼턴 보좌관을 협상 파트너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북한이 극렬 반대하는 '리비아 모델'을 주장해온 볼턴 보좌관의 해임으로 북한이 비핵화 실무협상에 복귀할 명분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각) 볼턴 보좌관이 북핵 해법으로 리비아 모델을 주장했던 것과 관련해 "매우 큰 실수", "매우 큰 잘못", "우리를 후퇴하게 만들었다" 등의 표현으로 향후 협상에서 달라진 접근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북미 간 실무협상 재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74차 유엔총회의 이낙연 국무총리 참석 계획을 취소하고 직접 참석을 결정했다. 유엔총회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성사되면서 전격적으로 방미 결정이 이뤄졌다.
북미 간 물밑 접촉을 통해 비핵화 실무협상에 대한 구체적 일정까지 공개 거론하는 상황이 전개되자 문 대통령이 움직일 비핵화 외교의 공간이 열린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실무협상에서 다룰 의제를 공유하고 비핵화 대화의 동력을 이끌어가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북미 간) 경색 국면을 유지해왔었다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시작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지금은 실질적인 북미 대화가 굴러가는 일종의 '전초전'의 상황이고, 대화가 무르익은 상황"이라면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그런 것이 주요 사안으로 논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08.29.
남북 정상회담이든 북미 정상회담이든 먼저 열리는 선후(先後) 관계 보다는 비핵화 대화의 '선순환 관계'는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이다. 각각의 정상회담 전에 한미 정상이 만나야 한다는 인식이 한미 정상회담 사례에 반영돼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물밑에서 조율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NSC 간에는 지난 6·30 한미 정상회담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직후부터 날짜가 고정된 유엔총회 전후의 변화된 정세를 감안해 소통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불확실한 여러 상황들을 감안해 올해 유엔총회 참석자를 빈 칸으로 남겨뒀던 것일뿐 엄밀하게 얘기해서 이 총리의 참석 방안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내용을 북측과 공유하고 북미 대화를 촉진해야 올해 안으로 남북미 3자 대화 트랙이 가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구상 대로 한미 정상회담 →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 → 3차 북미 정상회담 순으로 각급 대화가 연내에 전개된다 하더라도 절차상의 대화 프로세스와는 무관하게 비핵화의 정의와 방식을 둘러싼 북미 간의 인식차를 좁히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 내 모든 핵 시설과 핵 개발 프로그램,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비핵화 최종 로드맵을 협상에서 일괄타결한 뒤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방식의 상응조치를 취해가겠다는 게 미국이 주장하는 이른바 '빅 딜(big deal)'이다.
하지만 북한은 매 단계별로 비핵화 조치와 상응하는 미국의 보상 조치가 따라야 한다는 '동시적·단계적(simultaneously and phased)' 방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스몰 딜(small deal)'로 분류된다.
북미 정상은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당시 비핵화 방식은 물론 영변 핵시설 폐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에 대한 등가성(等價性)에 대한 뚜렷한 견해차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영변+α'에 스냅백(제재 해제 후 위반 행위 적발시 제재를 복원하는 방식) 조항을 더해 합의를 시도했지만 볼턴 보좌관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고 최 부상이 지난 3월 평양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1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이러한 북미 주장의 절충안인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비핵화 로드맵 합의 후 스몰딜)'과 '얼리 하비스트(early havest·스몰딜의 연속 합의)'를 제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시키진 못했다.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7.11.07.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것과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이 제시할 새로운 구상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국제사회가 함께할 때 한반도 평화는 더욱 굳건해 질 것이다. 이번 유엔총회가 함께 만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국제사회를 통한 비핵화 구상 의지를 밝혔다.
북미 실무협상의 장기 교착 국면에서 비핵화 외교전이 본격 시작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여부도 주목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한창 전개되던 지난해 끝내 이뤄지지 않았던 답방이 올해 성사될지 관심사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매진하는 북한의 입장과 올해 남북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올해 역시 답방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외교가 안팎의 시선에 무게가 쏠린다.
청와대가 오는 11월 중순 부산에서 한·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는 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검토는 하고 있지만 북한과 협의가 전제 돼야하는 문제"라며 "김 위원자의 답방 문제는 특별정상회의 참가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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