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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듬파워 "별종 취급받던 래퍼, 이제는 멋있는 직업"

등록 2019.09.2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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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데뷔 9년 만에 첫 정규 '프로젝트 에이'

왼쪽부터 보이비, 지구인, 행주 ⓒ아메바컬쳐

왼쪽부터 보이비, 지구인, 행주 ⓒ아메바컬쳐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86년생 동갑내기 김성경, 이상운, 윤형준은 고등학교 시절 '바보언덕'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했다. 인천 인하부고 동창생인 이들이 야간자율학습, 방과 후 들락날락하던 학교 후문 분식집 이름. '쫄떡'을 즐겨먹던 이곳은 지금 사라졌으나, '추억은 방울방울' 떠올라 힙합그룹 '리듬파워'의 원형을 떠올리게 한다.

리듬파워가 24일 오후 6시 공개하는 첫 정규 앨범 '프로젝트 에이(A)'의 마지막 트랙에 노래 '바보언덕'을 실은 것이 일정의 '자기 선언'처럼 들리는 이유다. 

보이비, 지구인, 행주로 구성된 이 팀은 언더그라운드 시절 '방사능'으로 팀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세 활동명은 김성경, 이상운, 윤형둔의 예명이다. 각자 별명 등에서 편하게 따왔다.

리듬파워는 2010년 메이저에 데뷔했고 2012년 힙합계의 대부로 통하는 힙합듀오 '다이나믹듀오'가 이끄는 레이블 '아메바컬쳐'와 계약을 맺으며 급부상했다.

서울이 아닌 인천을 기반 삼은, 지역색이 뚜렷한 팀으로서는 이례적인 길을 걸어왔다. 2010년 발표한 '인천상륙작전'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숨은 명곡으로 통한다. 지난 3월 MBC TV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킬빌'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힙합의 본고장 미국으로 날아오르겠다며 신곡 '인천상륙작전+인천공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힙합가수들은 지역색을 뚜렷하게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지구인은 "한국 힙합 신에서 지역을 내세우며 등장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면서 "지역색을 고민한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인천이 추억에 제일 많은 동네라 자연스럽게 인천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인천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이 팀이 꾸밈없는 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메이저 데뷔 9년 만에 처음 발표하는 정규 앨범 '프로젝트 에이'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존경하는 청룽(성료), 홍진바오(홍금보), 위안바오(원표) 삼인방이 주연한 홍콩 영화 '프로젝트 A'(감독 청룽·1983)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인터뷰]리듬파워 "별종 취급받던 래퍼, 이제는 멋있는 직업"

개국초 홍콩 섬 주변에 난무한 대규모 해적무리들을 퇴치하는 이야기인데 청룽은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로 도망가는 악당을 추격하거나, 15m높이의 시계탑 시계에 매달리다 떨어지는 말 그대로 '맨몸 연기'를 선보인다.

새벽까지 고군부투했지만 달콤한 소득 없이 클럽을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쓸쓸한 패잔병들의 감성을 담아낸 리듬파워의 이번 앨범 타이틀곡 '6AM'에서도 그런 맨몸, 날 것의 정서가 느껴진다.

30대에 접어든 리듬파워 멤버들은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보이비는 "멤버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됐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면서 "이 앨범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생존과 발전"이라고 자신했다.

보이비는 '30대가 됐으니, 20대와는 다른 음악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최근 저희 모습을 자연스럽게 반영했다"는 것이다.

20대 때와 달라진 지점은 "좋아하는 것을 좀 더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이비는 "남들 앞에서 내 시선을 숨겼는데,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서 '이럴 이유가 전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리듬파워는 20대 시절 객기로 똘똘 뭉쳤다. 어디든 스며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팀명을 방사능으로 지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사용하던 이 팀명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여파 때문이었다. '크레파스' '강 약 중간 약' '얄개들' '쥬라기' 등이 팀명 후보군으로 올랐고, 언더시절에 이들을 알린 곡인 '리듬파워'를 따와 팀명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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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은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의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행주는 '쇼미더머니' 시즌6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리듬파워 멤버들은 한국의 힙합문화를 바꾼 것으로 평가 받는 '쇼미더머니'에 대해 긍정했다. 보이비는 "이전에는 주류 문화와 보이지는 않아도 확연한 선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 무너진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래퍼들이 메인 스트림에서 실력을 인정 받게 됐다. 저희도 수혜자"라고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대의 변화가 빠르다 보니, 예전의 클래식한 멋이 있는 힙합에 대해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점을 꼽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구조적인 것이라 아쉽다"고 부연했다.

행주는 "'쇼미더머니' 전에는 '너네는 잘 몰라, 나만 아는 멋이 있어'라며 자기네들끼리 떠드는 매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멋있는 거"라고 짚었다.

지구인도 "우리가 고등학교 때 특이한 사람, 별종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 래퍼라는 직업이 멋있는 직업이고 돈도 잘 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동의했다. 

리듬파워는 내년이면 벌써 메이저 데뷔 10주년이다. 친구로 만나 팀원이 된 이들은 입 밖으로 '해체'라는 단어를 꺼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목표 지향적 음악이 아닌,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이비는 "물론 싸운 적도 있고, 안 좋았던 적도 있죠. 하지만 그 말을 꺼내본 적은 없어요. 음악 활동 이전에 친구이기 때문이죠. 팀이 끝났다면, 해체라는 말보다 절교에 가깝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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