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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젠더이슈 이후 공연계가 바뀌었냐고요?"···'이갈리아의 딸들'

등록 2019.09.29 1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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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 아티스트' 김수정 연출 신작

김수정 연출 ⓒ두산아트센터

김수정 연출 ⓒ두산아트센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김수정 연출의 신작 '이갈리아의 딸들'을 공연계에 부는 '젠더 열풍'에 편승한 연극이라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구조를 들여다보게 된 젠더 이슈는 권력의 위계구조와 직결됐다. 2015년부터 극단 신세계를 이끌며 연극 '파란나라', '광인일기', '공주(孔主)들', '그러므로 포르노'를 통해 김 연출이 이야기해온 폭력, 차별, 불안 등은 결국 권력에 대한 문제들이었다.

두산아트센터 'Dac 아티스트'로서 선보이는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별을 넘어 나이, 직업, 성적 지향 등 우리 사회에 깊게 스며들어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김 연출은 "'이갈리아의 딸들'은 기존에 제가 해왔던 이야기랑 다르지 않다"면서 "기존에는 젠더라는 단어를 감각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기저 어딘가에 화가 있었죠. 불특정 다수의 권력에 대한 반항이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젠더 이슈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해왔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요."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7년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동명 여성주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1996년 국내에 출간됐다. 몇 년 동안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2015년 개설된 페미니즘 사이트 '메갈리아'는 '메르스'(MERS)와 '이갈리아'를 따 이름을 지은 것이다.

대학로를 강타한 '미투 운동' 이후 젠더 프리 작품이 급격하게 늘었고 여성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고하던 공연계 남성중심의 계급이 타파되는 현상인가.

김 연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처음부터 여성 연출가로 불렸는데,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어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어요"라는 것이다.

"첫 번째 유행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는 공연계 기저가 바뀌지 않고 있는데,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파란색이 빨간색으로 변했을 뿐이라는 생각이죠. 구성하고 있는 인원들은 바뀌지 않은 채, 작업하고 있으니 기존의 것이 변형됐거나 예전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죠."
 
김보경 ⓒ두산아트센터

김보경 ⓒ두산아트센터

'이갈리아의 딸들'은 40여년전 나온 소설임에도, 최근 어떤 여성주의 콘텐츠보다 전복적이다. 극 중 배경인 '이갈리아'는 여자가 아이를 낳고 사회 활동을 하며 남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나라.이갈리아에 살고 있는 소년 페트로니우스 브램을 중심으로 성역할, 사회적 계급 등으로 인한 차별과 차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페트로니우스는 연극에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잠수부가 되고 싶다는 꿈 때문에 가모장적인 어머니와 종종 부딪친다. 또 소년이라는 이유 때문에 성적으로 품평 당하고, 항상 성적인 폭력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반면 그의 여동생 바 브램은 짓궂고 못됐으며 가모장적이다.

이렇게 현재와 모습이 뒤바뀐 이갈리아에서도 여성과 남성은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고, 그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눠진다.

공연계가 조금은 변화하는 중이라고 믿고 있었던 바 브램 역의 김보경은 이번 연극을 연습하면서 그런 생각이 깨졌다고 털어놓았다. "70년대에 이미 나온 이야기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무시했거나 계속 했왔는데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짚었다.

교제하는 여성에게 사과하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는 페트로니우스 역의 김정화는 이번 작품을 통해 "남성으로서 혜택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어요. 여성은 그저 자신의 의견을 내뱉을 뿐인데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문화 콘텐츠의) 주인공이 남자였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도 남자였고, 시련에 대해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남자였어요. 예전부터 내려온 이런 구조 안에서 주인공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대체됐더라도, 결국은 남성적인 이야기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소한 것들부터 전혀 다른 식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이상 여성이 겪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보경은 반대로 이번 연극에서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여성의 노예화 역사를 다룬 신세계의 '공주들'에 출연했던 김보경은 "저도 모르게 무대에서 '공주들' 때처럼 놀라버릴 때 놀랐다"고 했다.

김 연출은 이번 연극 연습을 하면서 "남성과 여성은 종족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남성 배우들끼리는 이야기를 할 때 눈을 쳐다보지 않는데 여성 배우들은 눈을 쳐다보고 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젠더 크로스 연기술'이라는 것을 도입해 그 시선을 크로스시키는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배우들은 새로운 ‘몸틀’을 입어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정화는 "잠시나마 여성의 몸을 입어보고, 여성으로서 살아보니,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가해지는 폭력성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평생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김정화 ⓒ두산아트센터

김정화 ⓒ두산아트센터


이번 연극 때문에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김새를 의심하게 됐다는 김보경은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우리의 연기가 남성, 여성을 희화화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연출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권력의 위계 문제가 이번에도 역시 부각된다. 이번에 권력에 대해 같이 고민한 김보경이 권력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하기도 했다. "권력은 가지면 편안한 것 근데 자신은 모르는 것"이다.

김 연출은 "권력이라는 것은 역할 놀이 중 일부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태어났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주어지고, 그것이 없을 때는 쟁취하기 위해 발악하게 된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잘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이죠"라고 말했다.

대학로의 악조건 속에서 어렵게 작업해온 김 연출과 극단 신세계는 이번에 김 연출이 DAC 아티스트로서 두산아트센터의 지원을 받으면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

김 연출은 "연출가로서 챙김을 받는 적은 처음이라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당황했으며 고개를 못 들었다"고 했다. "좋은 환경에서 연습 중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단원들도 감사해하고 있고요. 이런 기회가 평생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떼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죠"라고 했다.

하지만 김 연출과 신세계는 안주하지 않는다. '이갈리아의 딸들' 공연이 끝나고 올해 연말 다시 거리로 나선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발생한 다양한 참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망각댄스' 새 버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갈리라의 딸들' 공연은 10월 1~19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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