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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 세종대왕이 꿈속에서 지은 시

등록 2019.10.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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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되고 반포된 시기는 1446(병인)년 음력 9월이다.

정인지는 8학자의 대표로서 해례본의 후서 끝부분에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이라 썼다. 여기서의 9월은 음력이며, 정통 11년은 1446년이다. 세종실록 1446년 음력 9월29일자 기사에서, 사관들 또한 “이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고 썼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이 지은 시문을 모아 엮은 책인 ‘열성어제(列聖御製)’에 세종대왕이 남긴 유일한 시 한 수가 있다.
놀랍게도, 그 시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된 1446년 음력 9월에 세종이 꿈속에서 지은 시다.

세종실록에는 없고 세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왕세자(문종)와 함께 부왕으로부터 꿈속 시를 구두로 전해들은 수양대군이 후에 왕위에 올라 신하들 앞에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세조실록에 적힌 세종이 꿈속에서 지은 시는 훈민정음 28자의 수와 같은 28자 칠언절구로 다음과 같다. “雨饒郊野民心樂(우요교야민심락), 日映京都喜氣新(일영경도희기신)。多慶雖云由積累(다경수운유적루), 只爲吾君愼厥身(지위오군신궐신)”.

이를 보면 두 군데에 의미상 어색한 부분이 있다. ‘열성어제’에선 셋째 구의 ‘累(루)’를 어떤 책에선 ‘善(선)’으로 썼고, 넷째 구의 ‘爲吾(위오)’는 어느 책에선 ‘在爲(재위)’로 돼있다고 주석했다. ‘爲吾君’일 경우 ‘우리 임금 위해’가 되어 말이 맞지 않으니 다른 책에 쓰인 것이 합당하다. 즉, 다른 책에선 위 시의 셋째 구는 “多慶雖云由積善(다경수운유적선)”이고, 넷째 구는 “只在爲君愼厥身(지재위군신궐신)”으로 쓰였다. 세종의 몽중시는 2구와 4구의 끝 글자 ‘新(신)’과 ‘身(신)’이 압운을 이루고 있는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교외의 들에 비 내려 풍요하면 백성 마음 즐겁고, 수도에 햇빛 찬란히 비치면 기쁜 기색 새롭나니. 나라의 많은 경사 비록 적선으로 인해서라 하나, 단지 군왕이 처신함에 그 몸을 삼가는데 있나니.”(번역: 박대종).

【서울=뉴시스】세종대왕이 훈민정음 반포 무렵(1446 병인년 음력 9월) 꿈속에서 지은 시. 세종은 어제명칭시가에서처럼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과 찬란히 빛나는 문명국을 염원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서울=뉴시스】세종대왕이 훈민정음 반포 무렵(1446 병인년 음력 9월) 꿈속에서 지은 시. 세종은 어제명칭시가에서처럼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과 찬란히 빛나는 문명국을 염원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나라의 많은 경사는 오직 군왕이 경거망동하지 않고 매사에 신중을 기함, 곧 몸가짐을 삼가는데 있음을 명심하라고 두 왕자들에게 꿈속 시를 전해준 것인데, 그 내용은 후대의 위정자들 또한 새겨야 할 명구이다.

이 몽중시는 같은 시기 1446년 음력 9월에 그 모습을 보여 서로 긴밀히 연결돼있는 ‘어제명칭시가’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왕과 용왕이 기뻐하는 과업은, 두성의 밝은 빛이 미치고 에워싸 천하가 평안한 것이니라. 근본이 틀어지면 나랏배는 표류하고 기강이 해이해지는 즉, 그로 인해 흉년이 들고 만사가 어그러질 것을 가엾이 여겨, 허공의 큰물을 두수로 떠서 마을마다 풍년 들게 하고 싶어라: 君虯快業~閭穰”

눈여겨봐야 할 점은, 몽중시 4구의 ‘君’자와 명칭시가의 첫글자 ‘君’이 같다는 점이다. 또한 명칭시가의 끝 ‘穰(풍년들 양)’자와 몽중시 1구의 ‘饒(풍족할·편안할 요)’자가 의미상 같아, 당시 세종의 정신이 어디에 집중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세종이 남긴 두 시문은 매우 신비롭다. 하나는 초성의 명칭 속에 남겼고, 다른 하나는 두 왕자에게 구두로 전한 것인데, 그 둘은 백성들의 삶이 풍요로운 세상을 염원했다는 점에서 서로 완전 일치한다.

세종은 백성들이 사는 들은 기름져 풍요롭고, 수도는 햇빛 비치듯 문명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다. 이제 우리는 세종의 ‘꿈속 시’를 통해 보다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궁극적인 목적은, 쓰기 쉽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표음문자를 만들어 백성들을 편안케 하고, 동시에 찬란한 문명국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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