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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영 "다름 인정 못하고 폄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등록 2019.10.20 0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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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 뮤지컬로 옮겨

11월16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서 개막

정영 작가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정영 작가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인간이 어떤 이유로 세상에서 추방되는가?"

뮤지컬 극작가 겸 시인 정영(44)은 돌연 의문이 들었다. 책장에 꽂혀 있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다시 보면서다.

프랑스 태생의 독일 시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의 작품. 19세기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던 시기에 쓰인 소설이다. 주인공 '슐레밀'이 자신의 그림자를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팔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슐레밀은 그림자를 판 대가를 받는다. 금화가 고갈되지 않는 마법의 주머니다. 이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는 그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때부터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정 작가는 이 작품에서 소외를 읽었다. "어떤 조직에서 추방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며 안타깝다고 했다. "그림자가 없어진 주인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해요. 그런데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거든요."

그림자는 일종의 은유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민자 등을 '그림자가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이 우리사회다. 정 작가는 "다름을 인정 못하고 외면하거나 폄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정 작가는 이 작품을 동명의 뮤지컬(프로듀서 오훈식·연출 오루피나·작곡 우디 박)로 옮겼다. 문제의식을 그대로 녹여냈다.

공연제작사 알앤디웍스의 다섯 번째 창작뮤지컬로 11월16일부터 내년 2월2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양지원, 장지후, 최민우가 슐레밀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다.

정 작가가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뮤지컬로 옮기고자 한 다른 이유는 이미지다. '그림자를 떼어내는 장면'을 무대 위에 서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판타지를 너무 좋아해요. 무용도 좋아하고.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판타지가 무대 위에서 춤 등으로 구현될 때 매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글을 쓰면서 영국 스타 안무가 아크람 칸의 작품 영상을 계속 봤다는 정 작가는 "몸의 언어가 단순하면서도 유쾌하잖아요. 경쾌한 듯 심오하고요. 그런 부분이 글에 반영됐으면 했어요"라고 했다. 

【서울=뉴시스】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포스터

【서울=뉴시스】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포스터


판타지에 대한 정 작가의 믿음도 이 작품이 뮤지컬로 재탄생하는데 한몫했다. 관객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기 불편한 진실이 판타지를 통해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상징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그림자는 현대의 부조리 사슬에 얽매인 정체성과 연결된다. "원작 자체가 판타지를 통한 실존의 이야기죠."

정 작가는 2000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예술단 '바람의 나라'(연출 김광보)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였다. 뮤지컬 '남한산성' '라디오스타' '소나기' '심야식당' 등을 작업했다. 최근 마니아를 양산한 연극 '알앤제이'도 그가 글을 썼다.

시의 언어와 뮤지컬 언어가 겹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접근하는 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뮤지컬을 쓰기 전에는 캐릭터 분석에 공을 들인다. "처음부터 설정을 잘못 잡으면 전개될수록 극과 캐릭터의 오차가 커져요. 제대로 분석이 안 돼 있으면 장면마다 인물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죠."

현재 중국을 오가며 현지 웹툰을 뮤지컬로 옮기는 작업을 같이 하고 있다. 따듯한 가족애를 다룬 작품이다. "많은 부분들이 맞물려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을 해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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