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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 故이수현 추모 현장서 "한일 우호 훼손 어리석어"(종합)

등록 2019.10.22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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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구하려 목숨 희생한 청년…우호정신 강조

"50년 불행한 역사로 1500년 협력 훼손해선 안돼"

"국경 생각해서 몸 던졌겠나…인간애는 국경 넘어"

인근 한인상가 방문…도쿄 특파원 시절 회상하기도

【도쿄=뉴시스】 일왕 즉위 의식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지하철역에 있는 고(故) 이수현씨의 추모비를 찾았다. 2019.10.22. (사진=총리실 제공) photo@newsis.com

【도쿄=뉴시스】 일왕 즉위 의식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지하철역에 있는 고(故) 이수현씨의 추모비를 찾았다. 2019.10.22. (사진=총리실 제공) [email protected]

【도쿄=뉴시스】김지현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는 2001년 지하철 선로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사망한 고(故) 이수현씨의 추모비를 찾아 "한일 간 50년이 되지 않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 걸친 우호·협력의 역사를 훼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22일 오후 도쿄 신주쿠(新宿) 신오쿠보(新大久保) 지하철역을 방문해 이씨의 추모비에 헌화한 뒤 취재진과 만나 "한일 두 나라는 길게 보면 1500년의 역사가 있다. 불행한 역사는 50년이 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리가 "50년도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일제 강점기 35년을 합친 기간으로 보인다고 총리실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배 등 불행한 역사보다 협력관계로 이어온 시간이 길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 총리는 이 표현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도 밝혔다. 김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의 과거사 반성 및 한일 교류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이 총리는 한일관계가 강제징용 판결과 수출규제 문제로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서도 양국 간 우호 정신을 살려나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고 이수현씨의 사고 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고인은 2001년 1월26일 귀갓길에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중 선로로 추락한 일본인 취객을 목격, 다른 일본인과 함께 취객을 구하려 몸을 던졌지만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치여 숨졌다.

당시 일본 언론은 26세에 불과한 한국 청년의 의로운 죽음을 대서특필했고, 이씨가 다니던 아카몬카이 어학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일본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일본 주요 매체에는 수천건의 격려 메시지와 조위금이 접수됐다.

양국 국민들을 감동시킨 이씨의 살신성인의 정신은 정치 지도자 간 교류로도 이어졌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당시 일본 총리가 이씨의 빈소를 직접 찾아 고인을 추모했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신오쿠보역에는 이씨를 추모하는 내용의 추모동판이 설치됐다. 동판에는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는 2001년 1월26일 오후 7시15분경,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쓴 채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긴다"고 적혔다.

이씨의 부친 이성대씨는 2002년 아들의 이름을 딴 'LSH 아시아장학회'를 설립하고 사고 이후 일본인들이 보낸 후원금을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2015년 한일 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 훈장을 받았다.

【도쿄=AP/뉴시스】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황궁에 도착해 의전 받고 있다. 2019.10.22.

【도쿄=AP/뉴시스】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황궁에 도착해 의전 받고 있다. 2019.10.22.

이 총리는 이씨의 희생정신을 생각하며 추모비를 응시하고, 두 손을 모아 묵념했다. 또 10초 가량 추모비를 바라보며 쓰인 글귀를 읽기도 했다.

이 총리가 이씨를 추모하는 현장에는 NHK, TBS, 교도통신 등 일본 현지 언론들이 취재를 나와 관심을 보였다. 지하철역을 오고가는 시민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이 총리는 "인간애는 국경도 넘는다는 것을 두 분의 의인이 실천해 보였다. 그런 헌신의 마음을 추모하기 위해서 왔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관계가 좋아도 왔을 것"이라며 "이수현 의인 같은 분들이 국경을 생각해서 몸을 던졌겠나.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거듭 말했다.

신오쿠보역 사고 현장을 둘러본 이 총리는 인근에 있는 한인상가를 찾아 동포들을 만났다. 한일관계 경색으로 일본 내 반한·혐한 감정이 고조되는 가운데 동포들을 격려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신오쿠보역은 1950년 롯데제과 공장 설립을 계기로 한인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음식점, 주점, 잡화점 등이 들어서면서 한일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총리는 상점들을 둘러보며 "29년 전 여기에 부임했었는데…"라며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의식 참석 차 일본을 방문 중인 이 총리는 1990년 11월 지금은 상왕이 된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즉위식을 취재했다.

이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새 일왕의 즉위 의식에 참석한 소감으로 "대단히 장중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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