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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민족정체성 지킨 재일조선인 기억해야"

등록 2019.10.22 20: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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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석 작가, 광주 찾아 '조선학교 수호 투쟁' 다룬 자전소설 소개

"일본 핍박·재정 압박 속에서도 지키려한 것은 학교가 아닌 모국"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전후 재일조선 청소년의 성장소설 '보쿠라노 하타'를 쓴 박기석 작가가 22일 오후 광주 서구 한 사무실에서 독자와 만나 책을 소개하고 있다. 2019.10.22.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전후 재일조선 청소년의 성장소설 '보쿠라노 하타'를 쓴 박기석 작가가 22일 오후 광주 서구 한 사무실에서 독자와 만나 책을 소개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학교는 민족 정체성의 보루였기 때문에 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지켜냈다."

전후 일본에서 민족교육을 고수했던 조선학교를 배경으로 재일청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 '보쿠라노 하타'(우리들의 깃발)를 쓴 박기석(82) 작가가 22일 광주시민들과 만나 이 같이 밝혔다.

박 작가는 "부모로부터 한국어 이름조차 물려받을 수 없었던 재일동포 2세, 나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재일조선인들이 학교를 무대로 펼쳤던 외로운 민족 투쟁을 담은 이야기다"고 책을 소개했다.

이어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교포들 대부분이 경남·전남 등지에서 피치못해 오게 된 1세, 그들의 자녀들이었다. 일본의 부당한 귀국정책, 불안한 한반도 정세, 생활 터전 등을 이유로 귀국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고 전했다.

교포 1세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고국을 그리며 우리말과 글을 모르는 자식들을 위해 국어강습소를 세운다. 해방 당시 소학교 1학년을 마친 박 작가도 2학년 진급을 포기하고 국어강습소에 다녔다.

정식 교육기관은 아니었지만 학생 수가 수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후 소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학생들의 성장과 함께 학교도 점차 중·고등학교로 확대 설립되기 시작해 대학까지 설립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공교육 체계 편입 요구와 재정 압박에 시달리며 조선학교는 폐교·통합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선학교 학생이 한국전쟁 반대 전단지를 배포한 일을 빌미로 일본 경찰들이 학교로 들이닥쳤고, 10살 남짓 중학생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교문에서 맞섰다"면서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터전을 지키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학교는 곧 우리에게 모국이었다"고 회고했다.

박 작가는 조선학교 설립운동과 발전, 당시 상황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생생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빼앗긴 말과 글을 되찾고 역사를 배우는 일 자체가 일본 안의 조선 해방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그들이 지키고자 하려했던 것들을 기억해달라"고 역설했다.

박 작가는 오는 23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일본으로 출국한다.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전후 재일조선 청소년의 성장소설 '보쿠라노 하타'를 쓴 박기석 작가가 22일 오후 광주 서구 한 사무실에서 독자와 만나 책을 소개하고 있다. 2019.10.22.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전후 재일조선 청소년의 성장소설 '보쿠라노 하타'를 쓴 박기석 작가가 22일 오후 광주 서구 한 사무실에서 독자와 만나 책을 소개하고 있다.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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