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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AD 70년경 천재작가 마가가 쓴 인간예수의 감동 드라마

등록 2019.10.30 12:55:28수정 2019.10.30 13: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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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오늘의 책]AD 70년경 천재작가 마가가 쓴 인간예수의 감동 드라마


【서울=뉴시스】정철훈 기자 =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경은 받드는 문헌이지 읽는 문헌은 아니었다. 성경을 문헌으로서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성서신학이 꽃핀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성서신학자들조차도 마가복음의 독창적인 성격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다. 27서의 편집체제상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나와있고 마가는 마태에 부속된, 그보다 좀 간략한 불완전한 텍스트라는 인상을 주어왔기 때문이다. 마가는 모든 복음서 양식의 원형이며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씌여진 것이다. 여기서 '먼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서라는 문학장르를 최초로 만들어낸 마가의 창조적 긴장감이 중요한 것이다.

반세기에 걸쳐 고전학을 연구해온 도올 김용옥이 마가복음에 접근하는 종교적 사유는 이 창조적 긴장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총론의 첫 줄에 도올은 이렇게 썼다.
"눈물이 흐른다. 내가 설교하고 있는 벙커1교회에 앉아있으면 눈물이 흐른다. 내 설교에 앞서 부르는 찬송가는 내가 선택하기로 되어 있는데, 당연히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잘 불렀던 찬송가들을 고르기 마련이다. '시온성에 사는 처녀들이여(64장)'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439장)'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166장)'"

도올은 "옛날 찬송을 부르다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라며 "무엇인가 태고적 전율이 나를 감싸며 억제하기 어려운 감회가 일시에 쏟아진다"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도올이 마가복음에 대한 강론을 자신의 눈물과 엄마 생각이라는 그리움으로 시작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다. "마가의 예수야말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예수'의 원상을 가장 정직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속에 원상이 있고 엄마 생각에도 원상이 있다.

그는 예수의 참모습을 찾아내는 유일한 길은 최초로 쓰여진 복음서인 마가복음의 독자적 성격을 파악하고 그 원문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다시 말해 마가복음이 예수의 삶에 관해서 가장 오리지날한 기록임이라는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개의 복음서가 있다. 여기서 가장 늦게 형성된 요한복음은 성격을 달리하고, 마태, 마가, 누가의 세 복음을 공통된 관점으로 기술되었다고 하여 공관복음서라 한다. 이 중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원 자료로 하여 타 자료를 더 보탠 증보판이다. 마가복음은 661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600개 이상이 마태복음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고, 누가복음에는 350개가 들어있다. 마태복음은 충실하게 마가복음을 계승했고, 누가복음은 보다 자유롭게 마가 이외의 다른 자료를 엮어 넣은 것이다. 성서의 복음서는 마가복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누구인가. 마가는 AD 70년, 유대교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던 시대를 살았다. 이 암울한 시기, 마가는 40년 전에 갈릴리의 풍진 속에서 살다간 생전의 예수를 살려내어 그의 언행을 당대의 민중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선포한다. 마가는 천재적인 사상가이자 작가였다. 그리하여 절망의 시대 그 끝에 서서 예수의 육성으로 새 희망의 복음을 감동적으로 전파하려고 했다.

마찬가지로 도올 역시 마가복음에서 느껴지는, 혈관 속에 피가 통하고, 맥박이 뛰는 이 살아 있는 예수를 전하고자 펜을 들었다. 집필 기간만 꼬박 2년. 국배판 6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도올 판 마가복음 해설서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가복음이 복음서 양식의 최초출현이라는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마가를 읽는 가장 정당한 방법은 어떠한 이론적 틀이나 선입견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80쪽)

하지만 선입견 없이 읽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예컨대 우리가 아는 예수는 40일동안 광야에서 금식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도올은 이것 마저도 선입견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에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밤낮으로 금식하셨다고 쓰여져 있는데 마가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유대광야는 정말 뜨거운 사막이며 그곳에서는 40일을 금식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불가능하다. 마가는 현실적인 사태에 관해서는 그 기술방식이 매우 쿨하다"(153쪽)

예컨대 마가복음 제 2장 27절~28절의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는 대목에 대해 도올은 이렇게 강론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모든 율법주의나 종교적 제식주의나 그와 관련된 이념적 그룬트(Grund)를 다 허물어버리는 래디칼한 발언이다. 사람이 정부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이 한마디의 생각,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이 한마디가 근대적 민주주의의 헌법이 된 것이라면, 예수의 선언은 그보다도 훨씬 더 래디칼한 것이다. (210쪽)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도올의 책만 낱권으로 따져 90여 권이나 펴낸 통나무 출판사 남호섭 대표는 "도올의 철학적 사유를 총체적으로 압축시킨, 인류 사상계에 새로운 동서융합의 지평을 제시하는 기념비적 저술"이라고 이 책에 의미를 부여했다.

611쪽.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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