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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추진한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

등록 2019.10.31 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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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밭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

[오늘의 책]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추진한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


【서울=뉴시스】정철훈 기자 = 1909년 10월 22일 안중근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 역에서 열차를 타고 중국 하얼빈을 향해 출발했다. 그로부터 4일 후인 26일,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

11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우리는 안중근의 유해는 물론 그가 사용한 총도 찾아볼 수 없다. 안중근이 사용한 총은 FN사의 브라우닝 권총 ‘M1900’이다.
M1900은 유명한 미국의 총기제작자 존 브라우닝이 설계를 한 다음 벨기에의 FN사가 이걸 전수받아 제작했는데, 이게 세계 최초의 슬라이드 후퇴방식 반자동권총이다. 안중근의 총은 왜 사라졌으며,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군사 분야 전문가이자 역사집필가인 이성주를 필두로 세 사람이 모였다. "'저거 브라우닐 하이파워인데?' 뒤돌아보니 이 황당한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총을 좋아하는 40대 남자 셋이 뭉쳤다. 그리고 밀리터리와 총기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 <건들건들>을 개설했다."

이들은 그렇게 총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가다가 우연찮게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기념관에 총기모델로 브라우닝 하이파워가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실제 안중근이 사용한 총 모델과는 다른 것이었다.이들은 안중근 의거 110주년인 2019년 안중근이 실제로 사용한 총 ‘M1900’을 복각하기로 의기투합하기에 이른다.

"1900년에 FN사에서는 어떤 방식을 썼는데?"
"리스트 블루잉!"
"100년 전 쓰던 방식인데 재현 가능해?"
"자료 찾았어."
"약품은?"
"이번에 200만 원 어치 주문했어."
"필요한 건?"
"없어. 스틸 종류별로 맞춰서 시험해 봐야지."

 이들은 두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나는 안중근이 사용한 M1900의 행방을 찾는 것, 나머지 하나는 하얼빈 의거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정황과 역사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그 출발점은 하나의 질문에 있었다. "안중근은 왜 M1900을 선택했는가."

이유가 있었다.  7미터 거리에서 단 6초 만에 7발을 발사하여 3발을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중시켜 사살하고 4발을 각각 그를 따르는 수행원 4명에게 명중시킨 안중근의 과업은 그의 뛰어난 사격 솜씨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총이 ‘M1900’이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장군의 신문기록에서 FN사의 M1900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발사한 탄환의 숫자를 확인하고 있다. 7연발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7+1이다. 탄창에 7발이 장전되고, 1발은 약실에 넣었다. 처음 8발을 장전했는데, 안중근은 마지막 1발을 쏘지 않고 총을 땅에 던졌다. 이 1발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있었다. 일본 측은 ‘자살’을 염두에 뒀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었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안중근은 무덤덤하게 대응했다."(191쪽)

이들이 직접 미국 사격장으로 건너가 실험한 바에 따르면, M1900은 존 브라우닝이 만든 역사상 최초의 자동권총으로, 당시 흔하게 쓰였던 육혈포(리볼버)에 비해 파괴력은 약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여러 표적을 향해 저격할 수 있었다. 또한 리볼버보다 반동도 작아 한 손으로도 정확히 조준, 사격할 수 있었다.

안중근의 저격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테러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의거였다. 안중근은 목표물을 저격한 후 아직 1발이 남아 있던 총을 버린 뒤 “꼬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지 않고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안중근은 법정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선언했다. M1900은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서 대한군인 대 일본군인으로 마주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는 안중근 장군의 주장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

 ‘밀리터리 마니아’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추진된 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는 어떤 국가기관의 힘도 빌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역사적 의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이른바 ‘총기 청정 국가’로 불리는 한국에 M1900을 들여오고, 미국으로 건너가 안중근의 저격을 실제로 재현하며, 일본 취재를 통해 ‘총번 262336’이 새겨진 M1900의 행방을 묻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시행착오를 그대로 담아냈다.
이성주. 311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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