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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안무가 프렐조카주, 몰래 발레 배운 유도소년이었습니다

등록 2019.10.31 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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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프레스코화', 11월 1~3일 LG아트센터서 한국 초연

앙줄랭 프렐조카주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앙줄랭 프렐조카주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프랑스 소년 '앙줄랭'은 파리 외곽 도시에서 가족 몰래 발레를 배우던 유도 소년이었다. 프랑스로 망명한 알바니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 소년은 어느덧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한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62)다.

3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으로 발레에 빠져들었다고 회고했다. 친구에게 빌린 책에 수록돼 있던 소련 태생의 세계적 영국 무용가인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의 사진이었다.

"저는 당시 유도를 배우고 있었고, 발레 연습실에서 유도복을 입은 채로 서 있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무용은 발레와 현대무용으로 통했다. 프렐조카주의 부모는 이를 싫어했다. 당시만 해도 춤을 추는 남자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렐조카주는 "당시에는 파리 외곽지역이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척박했기 때문에 제 친구들 조차도 이상하게 보던 상황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발레를 배우고 안무가가 된 프렐조카주는 무용가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것은 춤에서 나왔고, 그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클래식 발레를 공부한 프렐조카주는 이후 현대 무용으로 전향해 1984년 안무가로 데뷔했다.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움직임, 독특한 미학과 파격적인 해석을 선보이며 단번에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리옹오페라발레, 파리오페라발레, 뉴욕시티발레, 볼쇼이발레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작품을 안무했다. 2006년부터 액상 프로방스에 건설된 프랑스 최초의 무용창작센터 더 파빌론 누아르에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입성, 상임안무가로 매년 1~2편의 신작들을 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다.

세계적 안무가 프렐조카주, 몰래 발레 배운 유도소년이었습니다

지난 35년간 50여편이 넘는 작품들을 안무했다. 무용계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브누아 드 라 당스'와 '베시 어워드'를 비롯 수많은 안무상을 차지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2016년 프랑스 초연 후 호평을 들은 프렐조카주 발레단의 '프레스코화'(La Fresque)는 프랑스의 세계적 극장인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프렐조카주에게 만들어달라고 요청, 제작됐다. 프렐조카주의 특징인 강력한 몽환성, 역동성과 부드러움, 아름다움이 모두 녹아 있다.

11월 1~3일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첫 선을 보인다. 프렐조카주 발레단은 2014년 장 폴 고티에와 협업한 '스노우 화이트'를 포함 지금까지 다섯 차례 내한했다. LG아트센터 공연은 이번이 처음. 이번에 지역 투어도 돈다. 6일 부산문화회관, 9~10일 대전예술의전당 공연도 예정됐다.

작품은 중국의 몽환적인 설화 '벽화'를 바탕으로 현실과 재현,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 중국 청나라 초기에 나온 문어체의 괴이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 속에 수록된 '벽화'는 오래된 절을 방문한 남자가 벽에 그려진 긴 머리의 여인의 모습에 매혹돼 그림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벽화'의 주인공이 긴 머리의 여인에게 매혹되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공연이 시작하면 마치 긴 머리카락이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림 속 여인들로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긴 머리카락을 전후좌우로 흔든다.

프렐조카주는 "춤은 움직임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이야기는 좀 더 시적으로 표현됐다"면서 "이 설화를 선택한 이유는 가상현실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렐조카쥬 발레단 '프레스코화' (사진 = Jean-Claude Carbonne 제공)

프렐조카쥬 발레단 '프레스코화' (사진 = Jean-Claude Carbonne 제공)

남자가 벽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설정 때문이다. 프렐조카주는 앞서 e-메일 인터뷰에서 이 부분이 위치기반의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짚었는데 이날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라 젊은 층에게도 접근성이 높은 작업이었다"는 판단이다.

"지금 프랑스 경우에 젊은 층은 현대 무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극장 안에 점유율을 봤을 때 젊은 층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프레스코화' 음악을 (프라스 일렉트로닉 듀오인) '에어(AIR)' 멤버 니콜라스 고댕에게 요청한 것도, 무용은 잘 모르지만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무용을 볼 수 있게 하도록 확장을 한 부분이죠."
 
프렐조카주는 '프레스코화'는 이야기가 없는 편이며 대신 감정을 통해 이야기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또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고도 했다. 2인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군무는 마을의 분위기나 의식적인 부분을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그는 "황금 옷을 입은 장군 장면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발레적인 표현이 담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같이 여행하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벽화를 넘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 다른 현실, 그 곳에서는 다른 코드를 같이 느낄 수 있고, 모든 것이 춤으로 표현되는 곳으로 관객을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무용수 클라라 프리셸, 앙줄랭 프렐조카주, 로랑 르 갈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왼쪽부터 무용수 클라라 프리셸, 앙줄랭 프렐조카주, 로랑 르 갈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프렐조카주에 대한 무용수들의 믿음은 대단했다. 벽화 속 여인 역을 맡은 무용수 클라라 프리셸은 "프렐조카주의 움직임에는 강렬함이 있다. 같이 작업하다 보면 '천재와 작업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면서 "그가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보면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벽화 속으로 들어간 남자 역의 무용수 로랑 르 갈은 "'프레스코화'는 작은 동작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섬세하고 시적인 작품"이라면서 "창작은 즉흥성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무용수들이 제안을 하고 프렐조카주가 그걸 빠르게 잡아내 정확하게 만들어가는 게 흥미로웠다. 이것이 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마지막으로 프렐조카주에게 물었다. 안무가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아름다운 질문이면서 간단한 질문이라며 "건강과 몸과 시간"이라고 답했다.

"이걸 가지고 아름다운 순간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몸은 유일하고, 특별한 것입니다. 이걸 우리가 종종 잘못 다루기도 하지만, 무용수를 통해 그들의 몸을 발견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프렐조카주와 함께 여행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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