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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푸드]'안동 배추전'이 일품요리라구?… "먹어보면 알죠"

등록 2019.12.17 06:00:00수정 2019.12.17 2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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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프던 시절 먹던 소박한 음식…젊은층 '별식'으로 즐겨

장에 따라 맛 확달라져…유튜브도 '맛있게 부치는 법' 소개

전라도 잔칫집에 홍어 있다면 안동은 배추전 동네 돌려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안동 배추전'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안동 배추전' 2019.12.06 [email protected]

[안동=뉴시스] 김진호 임종명 기자 = "스무살쯤 돼서 고향에 갔을 때입니다. 시장 뒷골목에 가난한 청춘들을 위해서 그 허름하고 작은 가게에서 연세가 드신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배추전 굽는 화덕이 있었어요. 골목 밖에 화덕 내놓고 거기다 배추전을 계속 구워냈지요. 한참 배고플 때 친구 서너명이 어울려가면 두되들이 막걸리 주전자에 한 10장 정도 먹어도 큰 부담이 안됐어요."

경북 상주가 고향인 소설가 성석제(59) 작가에게 배추전은 값싸고 무엇보다 따뜻한 음식이라서 찬바람 불 때 먹기 좋은 추억의 음식으로 남아 있다. 당시 배추전 먹던 식당 주인은 다 바뀌고, 그 자리는 젊은 주인이 대신했다. 이제 그 시절은 재현될 수 없지만 그 시간과 공간은 요리로 재현된다고 믿고 싶어 한다

성 작가는 "배추전은 대단한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20대 때 시장통에서 '프로'(아주머니·할머니)들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만든 '작품'을  먹어보니 이건 하나의 독립적인 일품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을 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튜브에 맛있게 배추전 부치는 법도 소개돼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잔칫집에서 엄마가 배추전 부치면 최고 인기였어요. 조용히 다가가서 '엄마' 하며 살짝 불러요. 그러면 엄마가 싱긋 웃으며 부치던 배추전을 슬쩍 건네줘요. 배추전 한 장에 아이들은 신났어요."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요리연구가 권영숙(72·안동)씨가 전통방식으로 가마솥 뚜껑을 이용해 배추전을 부치고 있다. 배추전은 살짝 타야 고소함이 더한다. 기름을 찍어 바르는 도구는 무로 만들었다.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요리연구가 권영숙(72·안동)씨가 전통방식으로 가마솥 뚜껑을 이용해 배추전을 부치고 있다. 배추전은 살짝 타야 고소함이 더한다. 기름을 찍어 바르는 도구는 무로 만들었다. 2019.12.06 [email protected]

요리연구가 권영숙(72·안동)씨에게 배추전은 엄마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음식이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쌓여 곱씹을수록 가슴 따뜻해지는 추억의 먹거리다. 그는 전국요리경연 대회에 경북 대표로 출전했다. 지금도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수준급 요리사지만 고급요리 대신 소박한 배추전을 즐겨 부친다.

안동은 산이 많다. 도산면의 한 어르신은 "딸자식이 태어나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먹여 보내기 힘든 산간오지가 많았어"라고 일러준다.

안동 배추전(안동에서는 '배차전'이라고 부르기도 함)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바로 이런 산골에서 태어났다. 하루하루가 끼니 걱정으로 고달팠던 서민들이 배 굶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애환 깃든 음식이다.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요리연구가 권영숙(72·안동)씨가 전통방식으로 가마솥 뚜껑을 이용해 배추전을 부치고 있다. 푸른 배추잎으로 부쳐야 식감이 더 좋다.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요리연구가 권영숙(72·안동)씨가 전통방식으로 가마솥 뚜껑을 이용해 배추전을 부치고 있다. 푸른 배추잎으로 부쳐야 식감이 더 좋다. 2019.12.06 [email protected]

가을걷이가 끝나도 허기를 채워줄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 안동에 그나마 흔한 게 배추였다. 배고픈 서민들은 추수 후 밭고랑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배추 시래기를 주워다가 전을 부쳤다. 춥고 긴 겨울이 오기 전 땅 속에 구덩이를 파고 배추와 무를 묻으면 이듬해 봄까지 보관이 무난했다. 그런 연유로 배추전과 무전을 많이 부쳤다.

배추전을 부쳐 먹는 집은 그래도 형편이 괜찮은 집에 속했다. 아침은 보리밥도 못 먹어 보리죽으로 때우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는 호박 넣고 콩가루 풀어 만든 음식으로 빈속을 달래는 집이 많았다. 배고파 서럽던 시절에 배추전은 그렇게 안동에서 서민들의 배를 채워줬다.

이후 배추전은 안동을 중심으로 인근 의성, 영양, 청송, 봉화, 영주, 예천, 상주 등으로 퍼졌다. 결혼 등으로 자연스럽게 인근 지역의 음식으로 대중화 됐다는 게 정설로 전해진다.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푸른 배추잎으로 부친 안동 배추전.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푸른 배추잎으로 부친 안동 배추전. 2019.12.06  [email protected]

"배가 고프니 밀가루는 조금만 넣고 배추로 배를 채우는 겁니다. 피마자기름이나 들기름을 사용했어요. 많이 들이붓는 것이 아니에요. 기름도 넉넉치 않았어요. 배추전이 솥뚜껑에서 일어날 정도만 무 끝에 조금 찍어서 가마솥 뚜껑에 발랐어요."
 
서민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시작된 배추전은 태생부터 양반가 음식과는 거리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경북 북부지역 모든 집안의 대소사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됐다.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자른 뒤 차곡차곡 쌓아 올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린다. 전라도 잔칫집에 반드시 '홍어'가 있다면 안동에는 '배추전'이 있다.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배추전 반죽은 떨어뜨리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묽어야 한다. 그래야 구워 놓으면 배추와 반죽이 떨어지지 않고 배추의 온전한 식감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배추전 반죽은 떨어뜨리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묽어야 한다. 그래야 구워 놓으면 배추와 반죽이 떨어지지 않고 배추의 온전한 식감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2019.12.06  [email protected]

◇김장철 잘익은 배추가 기본… 식감 살아있어 물리지 않아

배추전은 맛이 유별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소박함 그 자체다. 물리지도, 질리지도 않는다. 한 입 먹은 뒤 자연스레 젓가락이 다시 간다. 요즘에는 별미로 찾는다. 김장철에 잘익은 배추가 기본이다. 잘익은 배추의 바깥잎은 맛이 없고 안쪽에서 세번째쯤 부터 일곱번째 잎까지 좋은 것만 골라서 호사롭게 부친다. 작고 노란 속 보다는 푸른 배추잎의 식감이 더 좋기 때문이다. 데쳐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맛이 떨어진다. 억센 줄기 부분은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려 저민 후 쓴다.

"이 시시나이 꺼(시시한 것) 배추전을 뭐하러 사진 찍노."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노란 배추 속으로 부친 안동 배추전.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노란 배추 속으로 부친 안동 배추전. 2019.12.06  [email protected]

영하의 겨울 날씨가 어깨를 잔뜩 움츠러들게 하던 며칠 전.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안동시 용상동의 소문난 배추전 가게를 찾았다. 70대 친정엄마와 50대 딸이 함께 운영하는 3~4평 남짓한 허름한 곳이다.

퇴근 때가 안돼 아직 손님은 없었다. 그러나 배추전이 나오기도 전 테이블 7개 중 4개에 손님이 찼다. 비 오는 날이면 일찌감치 자리가 꽉 찬다. 배추전을 주문한 뒤 요리하는 모습의 사진을 좀 찍자며 주방으로 들어서자 대뜸 주인은 손사래쳤다. 오히려 '시시나이 꺼'라며 잠시 잊고 있었던 '배추전의 평범함'을 일깨워준다.

어른 손바닥 만한 배추잎 2장을 지그재그로 나란히 놓고 부친 배추전 가격은 3000원. 배추가 금배추로 변해도 가격은 같다. "배추 금(가격)이 나가도 어에니껴(어떻게 합니까). 손님들이 찾는 데 꿉어야지." 올가을 배추 가격이 너무 올라서 힘들었지 않았느냐라는 물음에 식당 주인의 답변이다.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안동 배추전. 2019.12.06 kjh9326@newsis.com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안동 배추전. 2019.12.06 [email protected]

배추전은 줄기와 잎의 맛이 다르다. 익은 듯 마는 듯 부쳐 나온 줄기 부분을 입에 넣으니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심심한 수분이 짭쪼름한 양념장을 만나 입 속이 행복해진다. 줄기 속 수분에 열기가 더해져 심심한 맛과 뜨거운 맛이 어우러진다. 식으면 식은대로 밀가루의 쫄깃함과 아삭한 배추 맛이 어우러져 씹히는 식감이 좋다.

"들일하던 일꾼들이 출출함을 느낄 때면 안주인이 새참으로 막걸리와 배추전을 광주리에 담아서 이고 옵니다.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에 노릇노릇 부친 배추전을 손으로 쭉 찢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면 피곤함을 몰라요. 배추전은 역시 손으로 찢어 먹어야 더 맛있습니다." 입심 좋아 보이는 옆 테이블 중년 남성의 예찬론이다.
[서울=뉴시스]소설가 성석제. (사진 = 문학동네 제공) 2019.12.06.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소설가 성석제. (사진 = 문학동네 제공) [email protected]

◇반죽은 흐르듯 묽게…밀가루 옷이 얇을수록 '고수'의 맛

반죽은 떨어뜨리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묽어야 한다. 그래야 구워 놓으면 배추와 반죽이 떨어지지 않고 배추의 온전한 식감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배추와 반죽이 잘 붙으라고 배추잎에 마른 밀가루를 뿌리면 밀가루 맛만 날 뿐 배추 고유의 식감이 떨어진다. 밀가루 옷이 얇으면 얇을수록 고수로 인정 받는다. 소량의 계란을 풀고 소금간을 한다.

양념장은 배추전의 풍미를 더해준다. 집간장에 다진마늘, 고춧가루, 파, 참깨, 참기름을 넣는다. 칼칼한 맛을 원하면 잘게 썬 청양고추를, 새콤한 것을 좋아하면 식초를 가미한다. 수분이 많은 배추 특유의 달작지근한 맛과 아삭하면서도 시원한 맛, 청양고추의 칼칼한 맛이 함께 어우러져야 배추전의 고소함을 더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초장도 찍어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숙성시킨 전통 간장으로 만드는 양념장을 최고로 쳐준다.

성석제 작가는 '칼과 황홀'이란 산문집을 통해 배추전의 맛을 이렇게 노래했다.

"수분이 많은 배추전은 지진다고 해서 바삭해지거나 맛이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배추전의 맛은 밀가루의 맛, 기름과 간장의 맛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이었다. 허벅지를 득득 긁던 손에서 나온, 우리를 언제나 어린아이 취급하는 베테랑의 맛, 대범하고 소박한 맛."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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