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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에는 정년이 없어요"…김형중 전 교장의 50년 봉사 이야기

등록 2019.12.1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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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때부터 교육 재능기부 펼쳐

동료 교사들과 '익산 무궁화 야학' 설립…1974년부터 지금까지 운영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김형중(72) 전 전북여자고등학교 교장.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김형중(72) 전 전북여자고등학교 교장.

[전주=뉴시스] 윤난슬 기자 =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졸린 눈으로 칠판을 응시하며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난 50년간 가정과 경제 사정 등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꿈을 키워주고 있는 김형중(72) 전 전북여자고등학교 교장의 이야기다.
 
그는 야간학교를 운영하면서 놓쳐버리거나 허락되지 않았던 '배움의 꿈'을 뒤늦게나마 이루려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김 전 교장의 교육재능기부 봉사는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9월 원광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전 교장은 당시 학교 인근에 있는 원광고등공민학교(원불교에서 설립 운영한 비정규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여기는 어린 학생들이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학교로 와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며 공부하는 곳이었다.
 
김 전 교장은 "당시 학생들은 가장 아닌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낮에는 돈을 벌었고, 밤에는 배고픔을 달래가며 공부를 했다"면서 "미래를 설계했던 그들과 함께 교사들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추억이 다시금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도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학창 시절이었다"면서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에 어렵게 다니고 있었기에 그들의 향학열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미약하지만,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전 교장은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되는 학생들을 위해 원광고등공민학교에서 국어와 사회과목을 가르쳤다.

그 결과 김 전 교장이 가르친 학생들은 현재 스승의 길을 따라 초·중등 교사로 재직 중이거나 고위 공직자로, 혹은 수십 명의 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김 전 교장은 "비슷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승'으로 대접해주는 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라며 "제자들이 사회에 나와 제 몫을 단단히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이것이 내가 야학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이웃 전남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김 전 교장은 1974년 3월 고향인 익산(당시 이리)의 한 여고로 자리를 옮겨 선배 및 동료 교사 등과 함께 '익산 무궁화 야학'을 설립했다.

옛 익산시청 옆 구석진 건물에 자리한 야학에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갈망을 해소하기 위한 청년들로 가득했다. 가난으로 제때 배우지 못하고 공장 또는 남의 가게에서 어렵게 일하던 이들은 졸음과 배고픔을 이겨내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김 전 교장은 "세상에서 제일 무겁게 느껴진다는 눈꺼풀을 달래가면서 정신을 가다듬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희망이 보였다"면서 "피곤한 몸이라서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뒤에 따르는 배고픔까지 이겨낸다는 것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서러움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야학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다만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에는 50대 후반부터 많게는 70대까지의 성인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김 전 교장은 "지금이야 누구나 의무교육을 받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다"며 "야학을 찾는 분들은 가정은 안정되고 자녀들도 다 키워 부모 노릇을 해냈지만, 제때 배우지 못한 한을 갖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야학뿐만 아니라 김 전 교장의 봉사영역은 무궁무진하다. 1990년대 초에는 익산시가 개설한 공단 근로자를 위한 교양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2000년대에는 재직하던 학교에서 봉사대를 꾸려 농촌 봉사활동에 나섰다.

또 결식 우려 학생들을 위해 기부금을 선뜻 내놨고, '아름다운 자원 봉사단' 회원으로 활동하며 매월 장애인시설을 비롯한 양로원이나 노인회관 등에서 자장면 봉사를 펼치는 등 김 전 교장은 20대 시절부터 매 순간 봉사와 함께했다. 

최근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일 '2019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에서 교육부문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 전 교장은 "봉사에는 정년이 없다"면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한 사람이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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