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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옥신 오염 미군 기지 반환에 재조명되는 SOFA 독소 조항

등록 2019.12.12 16: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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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측, 미군 기지 반환 협상서 SOFA 제4조 제시하며 원상 회복 거부

SOFA 합의의사록에 환경 보호 규정 포함돼있지만 상징적 표현 그쳐

미측, '인간 건강에 알려진·임박한·실질적·급박한 위험' 기준 주장

헌법재판소 "자연 환경 위해 이행해야 할 사항 규율하고 있지 않다"

녹색연합 "기지 반환 이후에 협상 이어나가겠다는 건 대단한 착각"

SOFA, 1960년대 최초 체결 때부터 두 차례 개정까지 불평등 논란

비판여론 바탕으로 개정돼온 SOFA, 오염 기지 반환 후 파장 주목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임찬우 국무조정실 주한미군기지 이전지원단장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주한미군 기지 반환' 관련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2019.12.1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임찬우 국무조정실 주한미군기지 이전지원단장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주한미군 기지 반환' 관련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2019.12.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원주·부평·동두천 소재 주한 미군 기지 4곳이 지난 11일 반환된 가운데 기지 내 다이옥신 등 독성 물질 정화 책임을 놓고 한미 간 공방이 재현될 조짐이다. 우리 정부가 '선 반환 후 협의' 방침에 따라 정화 비용을 떠안는 형국이 되면서 미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미군 기지 반환 때마다 불거진 오염 정화 논란이 이번에도 재현되면서 반환 협상의 근거인 주한 미군 지위 협정(SOFA)의 문제점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현행 SOFA가 오염 정화 책임 공방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11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4개 미군 기지 반환 관련 정부 합동 기자회견에서 "SOFA 관련 문서에 (오염 정화 관련) 명확한 합의 사항이 없다"며 "미국은 부담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우리는 오염이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미 간 입장차가 크다고 밝혔다.

미 정부가 기지 반환 협상에서 정화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서 근거로 제시하는 SOFA 핵심 조항은 제4조다. 4조는 '합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에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제공됐던 당시의 상태로 동 시설과 구역을 원상 회복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하며 또한 이런 원상 회복 대신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보상해야 할 의무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 원상 회복 책임을 사실상 면제하고 있다.

SOFA 3조 1항 역시 '합중국은 시설과 구역 안에서 이런 시설과 구역의 설정, 운영, 경호, 관리에 관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해 미군의 기지 내 활동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개입과 원상 회복 요구를 제한하고 있다.

SOFA 협정 본문이 아닌 부속 문서에 환경 오염 원상 회복 관련 내용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협정 본문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2001년 1월18일 SOFA 2차 개정 시 합의의사록(Agreed minutes)에 '합중국 정부는 자연 환경과 인간 건강의 보호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이 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한다'는 내용이 새로 생겼지만 이 역시 상징적인 차원의 문구라는 평이다.

나아가 2차 개정 당시 체결된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는 오히려 우리 정부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뉴시스]박미소 기자 = 오염 물질 정화 책임 문제로 10년 가까이 반환이 지연돼 온 원주, 부평, 동두천에 있는 4개의 미군기지가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 반환 절차도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과 케네스 윌즈바크 주한미군 부사령관(중장)은 11일 오후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제200차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고 이 같이 합의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 주한미군 기지 전경. 2019.12.11. misocamera@newsis.com

[서울=뉴시스]박미소 기자 = 오염 물질 정화 책임 문제로 10년 가까이 반환이 지연돼 온 원주, 부평, 동두천에 있는 4개의 미군기지가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 반환 절차도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과 케네스 윌즈바크 주한미군 부사령관(중장)은 11일 오후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제200차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고 이 같이 합의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 주한미군 기지 전경. 2019.12.11. [email protected]

양해각서에는 '합중국 정부는 (중략) 주한 미군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의 치유를 신속하게 수행하며, 그리고 인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 치유 조치를 검토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포함됐다. 이는 미국 법률에 있는 KISE(Known·Imminent·Substantial·Endangerment to Human health) 원칙을 규정한 것이다.

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인간 건강에 관해 '알려진·임박한·실질적·급박한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한 원상 복구 없이 기지를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군 기지가 심각하게 오염됐다고 보고 있지만 미국 측은 자국 법을 기준으로 우리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사실 궁색하다. 미 측의 논리를 깨고 우리 주장을 관철할 근거가 부족하다.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2001년 11월29일 SOFA 조항 위헌 확인 소송에서 "이 사건 협정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합중국 군대가 공여 받은 시설·구역을 사용함에 있어서 자연 환경이나 인간 건강의 보호를 위해 이행해야 할 사항에 관해서는 전혀 규율하고 있지 않다"며 SOFA의 미비점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SOFA를 개정하지 않는 한 미 측의 논리를 깨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미 정부는 일본과 독일 등 타 미군 주둔국에서도 기지 내 환경 오염 정화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11일 기자회견에서 "환경 관련 부분에서 다른 나라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미 측이 일본에서 환경 관련 정화 비용을 부담한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미 정부로부터 미군 기지 정화 비용을 받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12일 성명에서 "미 측은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돼도 KISE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오염 정화를 거부해왔다"며 "그런데도 기지 반환 이후에 미 측과 협상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은 정부만의 대단한 착각"이라고 우리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았다.

SOFA 규정이 우리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SOFA는 1960년대 최초 체결 때부터 2번에 걸친 개정에 이르기까지 불평등 협정이라는 비판에 거듭 노출돼왔다.

[서울=뉴시스]오염 물질 정화 책임 문제로 10년 가까이 반환이 지연돼온 4개 폐쇄 주한미군 기지가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 반환 절차도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서울=뉴시스]오염 물질 정화 책임 문제로 10년 가까이 반환이 지연돼온 4개 폐쇄 주한미군 기지가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 반환 절차도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우리 정부는 6·25전쟁 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할 때부터 SOFA 체결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주한 미군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체결을 꺼렸다. 그러다 주한 미군 범죄로 우리나라 여론이 악화되자 1962년 SOFA 체결을 위한 양국 간 실무 협상이 시작됐다. 국회 비준 절차를 거쳐 1967년 2월9일 SOFA가 공식 발효됐다. 우리 정부는 SOFA 체결의 대가로 월남전 파병과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을 받아들여야 했다는 해석이 있다.

1980년대 반미 분위기 확산에 따라 미군 범죄가 사회 문제로 재차 부각됐고 SOFA 개정이 추진됐다. 개정 협상은 1988년 12월부터 시작돼 새 협정이 1991년 2월1일 발효됐다. 이때도 미국은 주한 미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지원을 관철시켰다.

이후 1992년 윤금이씨 살해 사건, 1995년 충무로 지하철 난동 사건 등 미군 범죄가 발생하면서 또다시 SOFA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자 한미 양국은 1995년 11월부터 다시 개정 협상을 벌였다. 2000년 2월19일 이태원 전용 클럽에서 한국인 종업원이 매카시 상병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SOFA 개정에 속력이 붙었다. 2000년 8월2일 개정 협상이 재개됐고 2001년 1월 정식 서명이 이뤄졌다.

이처럼 SOFA 개정은 주한 미군에 대한 비판 여론을 동력 삼아 이뤄져왔다. 이번 오염된 미군 기지 반환 문제를 계기로 SOFA에 대한 비판이 확산돼 개정의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우리 정부도 SOFA 개정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그 부분(KISE)에 대한 협의를 계속하고, 환경 문제가 발생 안 되도록 하기 위한 협의도 병행할 계획"이라며 "이 두 가지 협의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면 SOFA 관련 문서에 개정으로 반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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