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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푸드]아버지들 '천렵 보양식' 옥천 생선국수…아들 '버킷리스트'에

등록 2019.12.24 06:00:00수정 2019.12.26 10: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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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후 물맑은 금강에서 잡아 끓여먹던 '단백질 주 공급원'

청산 음식거리엔 얼큰하고 진한 국물 찾는 식객들 줄이어

국수에 곁들이는 '도리뱅뱅' 고소하고 바삭… 남녀노소 즐겨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 생선국수. 민물고기를 뼈째로 우려내 진하고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 생선국수. 민물고기를 뼈째로 우려내 진하고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옥천=뉴시스]이성기 기자 = 민물고기를 뼈째로 푹 우려낸 진한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는 충북 옥천의 대표적 향토음식 ‘생선국수’.
 
국물이 얼큰하고 시원해 속 풀이로 제격일 뿐 아니라 단백질, 칼슘, 비타민이 풍부해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옥천의 동쪽 끝 마을 청산면에 가면 이 생선국수의 8가지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전문 생선국수집이 8곳이나 있다.
 
6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느 집은 입에 착 달라붙는 국물 맛이 좋고, 그 앞집은 종종 씹히는 부드러운 생선 덩이가 식욕을 돋운다.
 
그 옆집은 추어(미꾸라지)만을 재료로 해서 깊은 맛이 남다르다.
 
◇청산면에는 국수집 8곳마다 8가지 색다른 맛 뽐내
 
주재료인 민물 생선은 옥천을 둘러싸고 있는 맑고 깨끗한 금강에서 잡는다.
 
청산면뿐만 아니라 옥천읍내와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인근 동이면에 가도 생선국수 전문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먹고 사는 것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 농촌 주민의 삶은 늘 고되고 팍팍했다.
 
몸이 부서지라고 농사일에 매달려도 명절날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흰쌀밥과 고깃국 한 그릇 구경하기 힘들었다.
 
이런 농촌 사람들에게 예부터 천렵(川獵)은 고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최고의 놀이였고,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할 좋은 기회였다.
 
조선 후기 헌종 때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4월령에 보면 천렵을 예전부터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川獵)을 하여 보세/ 해 길고 잔풍(殘風)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數儉)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磐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 소냐”라고 천렵의 재미를 노래하고 있다.
 
청산면은 속리산 자락에서 발원해 금강으로 흘러드는 보청천이 휘감아 도는 곳이다. 맑은 하천엔 물고기가 많았다.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이자 별로로 소문난 청산 생선국수 끓이는 모습.(사진=옥천군 제공) photo@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이자 별로로 소문난  청산 생선국수 끓이는 모습.(사진=옥천군 제공) [email protected]

청산면 사람들은 모내기가 끝나면 보청천으로 천렵을 나갔다.
 
이곳의 냇물은 바닥에 온통 자갈이 깔려 물이 투명할 정도로 맑았다.
 
고기를 잡아 채소와 갖은 양념 등을 넣고 푹 끓여 매운탕이나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이 매운탕에 1960년대 쌀 대신 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먹은 것이 전국에서 유명한 ‘옥천 청산 생선국수’의 시초다.
 
금강 줄기의 옥천과 영동, 충남 금산, 전북 무주에서 어죽과 함께 많이 만들어 먹는데, 이들 지역 중 청산면이 생선국수의 본향으로 꼽힌다.
 
옥천군 청성면 장수마을에서도 동네 아이들이 냇가에서 잠수질이나 대나무 등을 이용해 민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거나 생선국수를 끓여 먹었다.
 
[옥천=뉴시스]충북 옥천 청산 '선광집' 이미경 사장이 진하게 끓여낸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을 손님상에 내기 위해 그릇에 담고 있다.2019.12.22.  sklee@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 청산 '선광집' 이미경 사장이 진하게 끓여낸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을 손님상에 내기 위해 그릇에 담고 있다.2019.12.22.   [email protected]

상류 지역인 무주, 금산 지역은 물고기의 크기가 작은 편이어서 어죽의 형태로 발달했다.
 
 ◇옥천 물고기 유속 빨라 흙내 안나고 살이 단단해 씹는 맛 일품
 
옥천은 금강의 중상류 지역으로 유속이 빠르고 세서 강바닥에 진흙이나 모래가 없는 편이다.
 
덕분에 생선을 끓였을 때 비린내나 흙내 등의 잡냄새가 나지 않는다. 물고기의 크기도 다른 지역보다 큰 편이다.
 
민물고기의 살이 단단해 끓였을 때 육수의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생선의 살이 부서지지 않아 씹는 질감도 맛볼 수 있다.
 
생선국수가 상품화 되기 시작한 것은 청산면에 있는 ‘선광집’부터다. 이 집은 6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생선국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옥천=뉴시스]충북 옥천 청산 '선광집' 이인수 사장이 진하게 끓여낸 생선국수 육수를 살펴보고 있다.2019.12.22.  sklee@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 청산 '선광집' 이인수 사장이 진하게 끓여낸 생선국수 육수를 살펴보고 있다.2019.12.22.   [email protected]

◇6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온 '선광집' 생선국수 전통 이어가
 
어렵던 시절 놀이로, 지친 몸의 기력을 되찾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생선국수가 이제는 식도락가의 별미가 됐다.
 
얼큰하고 진한 맛이 배고프고 힘겨웠던 시절에 먹던 음식에서 진화해 특별한 맛을 찾는 식도락가와 젊은 층의 먹방 성지로 변했다.
 
장기 경기침체 등으로 힘겹고 고단한 삶을 산다고 하지만,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그 시절의 아픔을 딛고 어느새 ‘꼭 한 번은 먹어 봐야 할 인생 음식’이자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된 셈이다.
 
덕분에 이 마을은 주말과 휴일이면 생선국수를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음식거리가 됐다. 
 
민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맛과 흙내가 전혀 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진한 맛이 일품인 까닭이다.
 
생선국수는 큰 양푼에 인심을 함께 담아 그 양이 푸짐하다. 먹기도 전에 든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옥천=뉴시스]충북 옥천 청산면 소재지 내 생선국수 음식거리에 줄지어 있는 생선국수집.2019.12.22.  sklee@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 청산면 소재지 내 생선국수 음식거리에 줄지어 있는 생선국수집.2019.12.22.   [email protected]

뼈째 통으로 갈아 넣어 걸쭉하고 진한 육수에 면발도 부드러워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간다.
 
여기에 잘 익은 김치 한 조각 올려 함께 먹으면 식감도 살아나고 좋다.
 
황수섭 옥천군 문화관광과장은 "생선국수 만으로도 속이 꽉 차는 기분이지만, 국수를 먹고 남은 육수에 밥 한술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고 든든하다"라며 "얼큰하고 진한 뜨끈한 국물은 추운 겨울날 언 몸을 녹이는 데도 최고"라고 추천했다.
 
◇흰콩, 소주, 된장, 한약재 어우러져 깊은 국물 맛… 마늘, 양파 사용안해
 
생선국수는 먼저 각종 민물고기를 큰 솥에 넣고 생강, 흰콩, 소주, 된장, 그리고 두 가지 정도의 한약재 등을 같이 넣어 조리한다.
 
이때 된장은 반드시 직접 담가 발효한 것을 사용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마늘, 양파 등의 향이 강한 것들은 육수의 맛을 방해해 잘 쓰지 않는다.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 생선국수를 지역 관광자원과 연걔하기 위해 조성한 청산 생선국수음식거리 조형물 제막 모습.(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 생선국수를 지역 관광자원과 연걔하기 위해 조성한 청산 생선국수음식거리 조형물 제막 모습.(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중간 불로 6시간 정도 푹 끓여서 국물이 우러나면 체에 걸러 가시를 발라내고, 고추장을 풀어 간을 한 다음 다시 끓인다.
국수는 따로 삶아 물에 헹군다. 따로 삶아야 국수의 전분이 제거돼 생선국수의 국물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
 
끓는 국물에 파, 애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 등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 후 국수를 넣어 담아낸다.
 
생선국수에 쓰이는 물고기는 옥천 금강지역이나 영동 지역, 대청댐 주변에서 어획해 공급하고 있다.
 
사용하는 어종은 눈치, 칠어, 잉어, 붕어, 가물치, 쏘가리, 메기 등 비교적 큰 어종이다.
 
60년 전통의 생선국수집 주인은 "작은 물고기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작은 물고기는 끓였을 때 국물은 뽀얗게 우러나지만, 맛이 별로 나지 않고 살이 실처럼 찢어지거나 삭아 없어진다"라며 "바닥에 서식하는 메기 같은 조금 큰 물고기를 끓였을 때 국물 맛이 진하고, 살이 뭉텅이처럼 떨어져 나와 생선국수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별미 ‘도리뱅뱅’…모양도 예뻐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 '도리뱅뱅'. 작은 민물고기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놓는다고 해 붙여진 이음으로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옥천=뉴시스]충북 옥천의 향토음식 '도리뱅뱅'. 작은 민물고기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놓는다고 해 붙여진 이음으로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손가락 크기의 민물고기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담아 기름에 튀긴 후 고추장 양념에 조린 ‘도리뱅뱅’을 생선국수에 곁들이면 맛이 배가 된다.
 
금강에서 잡히는 빙어, 피라미를 튀긴 다음 고추장 양념을 곁들여 프라이팬에 한 번 더 튀긴 음식이다.
 
‘뱅뱅 돌아가면서 민물고기를 놓다’라는 의미로 청산면 ‘금강식당’ 사장인 신금옥 씨가 처음 이름 지은 것에서 유래됐다.
고소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옥천군은 2018년 청산면 지전리와 교평리 일대에 ‘청산 생선국수음식거리’를 조성했다.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선광집을 비롯해 청산면 지전리~교평리 일대 골목에 8곳의 생선국수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매년 4월이면 생선국수를 주제로 한 지역 축제도 열어 한 해 1만여 명이 넘는 방문객을 불러 모은다.
 
 옥천군 관계자는 “금강이 굽이치는 옥천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여러 곳에서 손짓하는 고장이면서 단아하고 정갈한 음식이 엄지를 치켜들게 만드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옥천에는 '3색 별미'가 있다. 얼큰하고 진한 생선국수, 시원하고 담백한 올갱이국밥, 멸치 국물에 쑥갓의 향긋함을 더한 물쫄면이다. 찬 바람이 부는 요즘 이들 3색 별미를 맛보러 옥천을 찾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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