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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푸드]베트남 열광시킨 박항서 감독, 뚝심의 원천은 ‘어탕국수’

등록 2020.01.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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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 고향 산청 생초면과 거창 강물 맑아 민물고기 유명

거창은 '맑은 국물', 산청은 '얼큰'…재료 같지만 맛은 달라

대구 등 도시로 떠난 사람들 주말이면 '고향의 맛' 찾아와

"조미료 넣으면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이 느껴지지 않아"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소재 늘비식당에서 식당 관계자가 손님상에 나갈 어탕국수를 끓이고 있다.2020.01.06. con@newsis.com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소재 늘비식당에서 식당 관계자가 손님상에 나갈 어탕국수를 끓이고 있다.2020.01.06. [email protected]


[산청=뉴시스]  옛부터 보양식이라고 하면 장어, 삼계탕, 백숙, 오리, 낙지, 전복 등을 흔히 떠올린다. 이는 전국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경남지역 18개 시·군 가운데서도 가장 낙후지역으로 손꼽히는 지리산 자락 서부경남지역에 가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바로 그들만의 특별한 보양식 ‘어탕국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탕국수는 해장음식으로도 그만이다.

어탕국수는 우리 고유의 향토음식으로 옛날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할 때 집주변 강이나 개울가에서 민물고기를 잡아서 뼈 채 끓인 뒤에 수제비나 국수를 넣어 먹었던 것이 기원이다.

특히 어탕국수는 흐르는 개울물에 그물을 치고 천렵(川獵)을 해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국 ‘천렵국’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지리산 자락 1급수에서 자란 물고기와 신선 채소 어우러져

‘천렵국’은 모래무지, 피라미, 꺽지, 붕어,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를 잡아 뼈를 추려낸 뒤 풋고추와, 호박, 미나리 등의 채소를 듬뿍 넣고 푹 끓인 후 고추장을 풀어 만든 음식으로 일반적인 민물매운탕과 비슷하다.

천렵국에 국수를 말면 어탕국수가 되고 수제비를 넣으면 어탕수제비, 밥을 말아서 끓이면 어죽이 된다.

또 미꾸라지만 넣고 끓이면 추어탕이다.
[거창=뉴시스] 거창 어탕국수.

[거창=뉴시스] 거창 어탕국수.


거창과 산청 등 덕유산, 지리산 자락 맑고 깨끗한 1급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인 어탕국수는 매니아 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경남 서부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거창 어탕국수는 된장을 풀고 우거지 등을 넣고 끓인 '맑은탕'인데 비해 산청 어탕국수는 고추가루 등을 넣어 얼큰하고 맵싸해 청정 1급수에서 자란 물고기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같지만 맛은 차이가 난다.

거창 어탕국수는 영호강에서 잡은 피래미, 눈치, 붕어, 메기, 미꾸라지 등 온갖 잡고기 등을 큰 솥에 뼈째로 푹 고운 후 채에 걸러 가시 등을 제거한다.

이어 솥에 된장을 풀고 우거지 등과 함께 푹 삶아주면 '맑은 어탕'이 된다. 이 맑은어탕은 애주가들에게 전날 마신 숙취를 해소하기 위한 해장국으로도 제격이다.

반면 산청 어탕국수는 재료손질 방법이 거창 어탕국수와 같지만 끓이는 과정에서 고추가루 등을 넣어 얼큰한 맛을 이끌어 낸다.

◇부모들의 입맛 젊은이들로 이어져 여기저기서 '후르륵'

특히 대구와 한 생활권으로 가까웠던 거창 사람들은 예전부터 유학이나 직장을 찾아 생활근거지를 대구로 많이 옮겼다.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은 옛날 거창의 어탕국수 맛을 잊지 못해 주말이나 휴일이면 '연어 처럼' 고향의 맛을 찾는다.

거창 어탕국수 거리엔 머리가 허연 부부들이 젊은 자식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후르륵 후르륵' 국수를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부모의 입맛이 자식으로 대를 이어 가고, 친구나 직장동료들에게 '가성비' 높은 어탕국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거창 어탕국수가 퍼져 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고향의 맛과는 차이가 있다고 식객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거창에는 거창읍 거창교에서 중앙교 사이에 단출하게 어탕국수 집들이 있다.

이 가운데 입소문이 난 '구구추어탕'은 거창군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돼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이 외에도 위천면 황산마을 거창 신씨 집성촌과 가조면 가조온천 주위에도 어탕국수집들이 손님을 맞는다.

구구추어탕에서 만난 한 손님은 "큼직한 배춧잎이 들어간 어탕국수는 조미료가 느껴지지 않는 개운한 맛이었다"며 "특히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고 했다.

구구추어탕 주인 최경화씨는 "우리집 추어탕은 화학조미료를 하나도 넣지 않는것이 비법이다"며 "화학조미료를 넣으면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이 느껴지지 않고 느끼해 진다"고 했다.

이어 "매일 그날 잡은 싱싱한 물고기만 사용해 한그릇 후르룩 먹으면 기운이 불뚝불뚝 솟아난다"고 자랑했다.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소재 늘비식당의 어탕국수. 20120.01.06. con@newsis.com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소재 늘비식당의 어탕국수. 20120.01.06. [email protected]


◇경호강-임천강-영호강이 있음에 ‘어탕국수’가 있다

‘어탕국수’ 식당들은 지리산 자락인 산청 경호강을 비롯해 함양 임천강, 거창 영호강 등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산청을 가로지르는 경호강은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리(약 32km)의 물길을 이루고 있다.

특히 산청과 함양, 거창 등 지리산 줄기에 연결된 서부경남지역에 ‘어탕국수’가 성행한 이유는 이곳에 맑은 강과 개울이 많아 민물고기가 풍부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어탕국수는 먹을거리가 귀한 시절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단백질 섭취수단이었다. 민물고기를 뼈째로 야채와 함께 삶아 끓여서 칼슘도 풍부해 보신탕 또는 삼계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이다.

또한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도 좋으며 숙취와 해장국으로도 적합하다. 경상도식 어탕국수의 특징이라면 방아잎과 제피(초피)가루를 넣어 먹는 것이 충청도식과 좀 다르다.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인근 경호강에서 한 주민이 물고기를 잡기위해 투망을 던지고 있다.2020.01.06. con@newsis.com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인근 경호강에서 한 주민이 물고기를 잡기위해 투망을 던지고 있다.2020.01.06. [email protected]


일제강점기 무라야마 지준이 저술한 ‘조선의 향토오락’에는 경남의 17곳을 비롯해 전국에서 천렵이 성행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당시에도 서민들이 민물고기를 많이 잡아 먹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태종실록’에는 임금이 완산 부윤에게 지시해 자신의 형 회안대군이 유배지에서 천렵하는 것을 허락한 기록이 나오고 ‘연산군 일기’에는 선릉수릉관 박안성이 재실에 냄새를 풍기니 제관은 천렵을 못하게 하자고 건의한 대목도 나온다.

‘어탕국수’로 유명한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이구마을에는 ‘늘비물고기’ 마을이 있다. ‘늘비’는 옛날 생초면 어서리 생초장터내 이름이다.

당시 어탕국수로 ‘늘비식당’이 유명세를 타며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산청군에서 이곳을 '늘비물고기'마을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구마을에는 주민들이 민물고기 고장 표지석까지 설치해 놓았다. 이 일대에는 어탕국수, 민물고기찜 등 전문 식당이 12곳이 성업중이다.

최근 어탕국수로 유명한 늘비식당을 찾았는데 점심 식사기간이 끝난후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소재 늘비식당에서 한 손님이 어탕국수를 먹고있다. 2020.01.06. con@newsis.com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소재 늘비식당에서 한 손님이 어탕국수를 먹고있다. 2020.01.06. [email protected]


늘비식당은 배병희·조미애 씨 부부와 조씨 오빠인 조창균 씨도 함께 한다.

 부부는 음식조리를 담당하고 어부인 조창균씨는 맑은 경호강에서 어탕국수, 피리튀김 등에 사용할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공급해 주고 있다.

조창균씨는 “내수면어업 허가증을 가지고 있어 어탕국수에 사용할 신선한 물고기를 잡기위해 매일같이 경호강에 나가고 있다”며 “어탕국수의 맛은 맑은물에서 자란 신선한 물고기가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조미애씨는 “늘비식당은 엄마가 처음에 생초장터에서 국수집을 했는데 경호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손님들에게 매운탕을 끓여준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어탕국수를 시작하게 됐다”며 “지난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물려받아 40년째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초 어탕국수는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맑은물에 자란 물고기가 경호강을 급하게 돌며 흐르는 여울이 많은 탓에 이곳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육질이 좋고 다른지역에 비해 맛있다”고 덧붙였다.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늘비식당에서 손님이 어탕국수를 맛있게 먹고있다.2020.01.06. con@newsis.com

[산청=뉴시스] 차용현 기자 = 6일 경남 산청군 생초마을 늘비식당에서 손님이 어탕국수를 맛있게 먹고있다.2020.01.06. [email protected]


◇‘어탕국수’는 뼈째로 중불에서 2~3시간 푹 고와야 '제맛'

어탕국수를 끓이는 방법은 추어탕과 거의 비슷하다.

생초 어탕국수는 경호강에서 잡은 신선한 붕어며 쏘가리, 메기, 피라미, 미꾸라지 등 온갖 민물고기를 뼈째 푹 삶아 요리한다.

먼저 민물고기를 깨끗이 씻은 후 통째로 중불에서 2~3시간 정도 푹 삶는다. 그러면 뿌연 색깔의 진하고 걸쭉한 육수가 우러난다. 물고기는 순수자연산 고기만 쓴다. 자연산이 아니면 제맛이 안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체에 한번 걸러 가시를 추려낸 후 고춧가루, 고추장, 생강, 후추, 된장, 들깨가루, 부추, 청양고추, 깻잎 등을 넣고 끓여서 손님상에 내면된다.

이런 까닭에 어탕국수는 한겨울 차가운 날씨에 먹어도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어탕국수로 잘 알려진 산청군 생초면은 특히 베트남 국민영웅으로 거듭난 박항서 감독의 고향이어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박 감독의 고향 후배인 배영복 산청늘비물고기마을 도농교류센터 사무장은 "지금 유명한 생초 어탕국수는 박감독이 어릴적에는 상품화되지 않았고 당시에는 매운탕 이었다. 현재 유명세를 타며 상품화된 어탕국수의 원조는 매운탕이다"며 "박 감독은 어릴적 부모가 경호강 맑은물에서 잡은 물고기로 민물 매운탕을 즐겨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은 중학교까지 고향인 이곳에서 생활하고 형님과 누나를 따라 고교시절은 서울에서 보내고 방학을 이용해 내려오곤 했다"며 "고향을 찾아오는 박 감독의 밥상에는 특별영양식으로 매운탕이 자주 올랐다"고 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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