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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성 동성간의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록 2020.01.09 17: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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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벡델테스트'라는 지표가 있다. 이는 영화 산업에서 여성에 대한 성 차별을 나타내기 위해 생겨난 지표로,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2명 포함할 것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등을 충족해야 한다.

영화계의 여성 차별이 완화되면서 이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이 많아지고 있지만, 영화계의 여성 차별은 여전하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영화계는 여전히 남성 단독 혹은 남성 위주의 복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다수를 이룬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인 여성 4명을 제외하고 남성은 몇 초씩 등장하는 단역이 전부다. 영화에 남성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과장이 아니다.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email protected] 

영화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성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룬다. 동성애가 더 이상 영화에서 낯선 소재는 아니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감안할 때, 여전히 파격적인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영화는 여성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로 동성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확히 한다. (사실 동성애에 관해 찬성 반대를 나누는 자체가 우스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러한 것을)

그와 동시에 영화는 여성에 대한 억압된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과거긴 하지만,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여전히 여성에게 드리워진 여러 사회적 제약을 생각하게 한다.

18세기 중후반 자유롭게 살고 싶은 프랑스의 귀족 여인 엘로이즈(아델 에넬)는 부모님의 성화로 얼굴도 모르는 밀라노의 남편에게 시집을 가야할 환경에 처해있다. 부부의 연을 맺는 첫 단계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예비 남편의 집에 보내는 일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엘로이즈는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를 거부하고, 이로 인해 그의 어머니인 백작 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은 골머리를 앓는다.

백작 부인은 여성 화가인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를 외출 금지 중인 엘로이즈에게 산책 친구라는 명목으로 소개하고, 그에게 몰래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릴 것을 요청한다. 당시 여성 화가로서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여성 화가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작업 중의 하나였다. 마리안느의 대사와 극 중 설정을 보면, 당시 여성 화가는 남성의 누드화는 그릴 수 없는 등 제약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회에 그림을 낼 수도 없었다.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email protected] 

영화 속에는 남녀 평등에 대한 갈구뿐만 아니라 신분을 초월하는 평등 의식도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백작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귀족인 엘로이즈, 평민인 화가 마리안느, 하녀인 소피(루아나 바야미)는 모두 평등한 친구다. 함께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영화 중반쯤 오르페우스 신화에 관해 서로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터놓고 얘기한다. 이 장면 속 대사는 각각의 캐릭터의 성향을 설명하는 동시에 결말과도 맞닿는다.

사실 표면적으로 묻어나는 평등 의식보다 감독이 더 치중한 점은 '사랑'에 대한 묘사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사실 여성 간의 사랑이라는 점은 중요치 않다. 그것은 표면적인 설정일 뿐이다. 영화는 성별을 떠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게 되고, 주어진 환경에 의해 사랑이 좌절됐을 때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email protected]

연출을 맡은 셀린 시아마 감독은 자신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음악의 활용과 등장인물의 의상까지 신경 썼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영화에 음악을 넣는 걸 자제했다. 대신에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방식으로 붓 소리, 스케치 소리, 파도 소리, 바람, 발걸음, 옷깃의 스침 등 마치 ASMR 같은 소리에 관객이 집중하도록 의도했다.

의상 감독 도로테 기로는 의상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도록 맞춤제작했다. 그는 사회학적인 부문, 역사적 배경, 배우의 움직임까지 고려해 의상을 제작했다. 특히 마리안느의 의상에만 주머니가 있는데, 이는 당시 여성에게는 금지됐던 것으로 억압에 저항하는 마리안느의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설정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소녀 간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 장편 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로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11년에 '톰보이'로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테디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2014년 '걸후드'로 제67회 칸영화제 퀴어종려상을 받았다. 이 작품 또한 지난해 열린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표상'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20.01.09 [email protected] 

'엘로이즈'를 맡은 아델 에넬은 '워터 릴리스'로 세자르영화제 신인상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어 '라폴로니드: 관영의 집'(2011)으로 201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프랑스의 연기파 배우로 떠올랐다. 이후 영화'수잔'(2013), '싸우는 사람들'(2014)로 2년 연속 세자르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노에미 멜랑은 '마리안느' 역을 맡았는데, 제22회 '하늘이 기다려'(2016)로 세자르영화제와 뤼미에르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에 후보로 오르며, 프랑스 영화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아델 에넬과 함께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으로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정적이지만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노골적인 정사신 없이도 사랑의 감정을 밀도있게 표현해 공감을 자아낸다.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 16일 개봉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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