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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블랙박스]고집스러운 레이서, '페라리'를 탄생시키다

등록 2020.01.21 0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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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사진=페라리 제공)

[서울=뉴시스]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사진=페라리 제공)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자동차 마니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차 '페라리'는 자동차 레이서로 유명했던 엔초 페라리에 의해 1947년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탄생한 이탈리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다.

엔초 페라리는 1898년 2월18일에 이탈리아 외곽의 한 작은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볼로냐에서 처음 본 자동차 경주는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14살부터 운전을 했으며, 21살 때 자동차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최고의 레이서였던 페리체 나지로의 소개로, 스포츠카 제작업체 CMN사로 직장을 옮겼고, 50km산길 달리기 경주에 첫 출전하게 됐다. 그는 1924년 알파 로메오의 공식 선수가 됐고, 1929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설립했다.

[서울=뉴시스]1947년 탄생한 페라리 125S.(사진=페라리 제공)

[서울=뉴시스]1947년 탄생한 페라리 125S.(사진=페라리 제공)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가 알파 코르세 사의 레이싱 매니저가 되던 해인 1938년까지 알파 로메오 차량의 레이스를 지원했으며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의 차로 경주를 벌였다.

엔초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와 결별한 이듬해인 1939년에 기존 스쿠데리아 페라리 본사에 자신의 회사인 '오토 아비오 코스트루지오니'를 설립, 1500cc 8기통 '815스파이더'를 제작했다. 이중 2대는 1940년 밀레 밀리아 경주를 위해 제작됐다. 하지만 이 차는 알파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페라리의 이름으로 생산되지 못했다.

곧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자동차 경주가 중단되고, 엔초 페라리는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1943년 작업장을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이전했다.

[서울=뉴시스]페라리 엠블럼.(사진=페라리 제공)

[서울=뉴시스]페라리 엠블럼.(사진=페라리 제공)

전쟁이 끝날 무렵 디자인과 자동차 생산이 재개돼 1947년 역사상 첫 페라리 12기통 1500cc '125스포츠'가 탄생했다. 엔초 페라리의 이름을 딴 첫 자동차였다. 이 차는 1947년 5월 피아젠자 서킷에서 데뷔했으며, 불과 2주만에 테르메 디 카라칼라 서킷에서 열린 로마 그랑프리 에서 우승을 차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엔초 페라리는 '독설가'로 유명했다. 페라리가 포드와 람보르기니를 모욕하는 독설을 날려 걸작 '포드GT',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가 탄생한 비화는 유명하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도약하는 말'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전투기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자신의 비행기에 그려 넣었던 것으로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이라고도 불린다.

[서울=뉴시스]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사진=페라리 제공)

[서울=뉴시스]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사진=페라리 제공)

1923년 엔초가 첫 우승을 차지했던 사비오 레이스 경기에 감명을 받은 바라카 백작 부부가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아들이 생전에 아끼던 뛰어오르는 말의 모습을 담은 배지를 선물한 것이 그 기원이다. 엔초는 '도약하는 말'에 그의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본거지인 마라넬로의 상징 색깔인 카나리아 노란색 방패 문양을 형상화시켜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페라리를 상징하는 앰블럼이 됐다.

방패형 앰블럼 속 뛰어오르는 말의 양옆에 써 있는 'S'와 'F'는 레이싱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를 상징한다. 페라리 차량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붉은색은 1900 년대 초 국제자동차협회에서 개최한 그랑프리 경주에서 경주에 참여한 이탈리아 차량에 부여된 컬러였다.  

엔초 페라리는 1969년 늘어나는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회사 지분의 절반을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 그룹에 매각했으며, 이는 1988년 90%까지 증가했다. 엔초는 1988년 8월 페라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40주년 기념모델이자 유작인 F40을 남기고 아흔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엔초 페라리가 남긴 것은 페라리의 명성 그 이상이었다. 페라리는 전 세계 자동차경주에서 5000회 이상의 우승을 달성했으며, 그 명성은 전설처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서울=뉴시스]페라리 SF90(2019)(사진=페라리 제공)

[서울=뉴시스]페라리 SF90(2019)(사진=페라리 제공)

창업주의 정신을 통해 만들어진 완벽한 성능과 이탈리아 유명 디자인 업체인 피닌파리나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스타일이 더해져 페라리는 전세계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이탈리아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철저한 개인 맞춤 방식 차량 제작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페라리는 실내 가죽의 스티치부터 브레이크 캘리퍼의 색상까지 개인맞춤을 지향한다. 페라리의 '테일러메이드 프로그램'은 1950~60년대 소비자들이 자신만의 자동차를 추구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소재, 색상 및 마감을 자유롭게 선택하던 시기에 시작된 마라넬로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외부 색상부터 실내 트림까지 페라리의 모든 디테일에서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고 마감, 액세서리, 소재, 트리트먼트 및 색상까지 전에 없이 폭넓은 선택권을 가진다. 자동차의 디테일이 결정되면 고객은 자동차를 인도받을 때까지 제작에 관련된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할 경우 마라넬로를 방문해서 직접 자동차를 가지고 갈 수도 있다.

※車블랙박스는 자동차 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고정코너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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