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테이프·끈 없어진 마트, 20일 지났지만 시민들 '우왕좌왕' 여전
장바구니 준비·구입 많지만 테이프·끈 찾는 고객 여전
"마트서 장바구니 준비한 이용객에게 인센티브 줘야"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3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포장용 테이프와 끈 제공이 중단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형마트 3사는 환경부와 자율협약을 맺고 포장 테이프와 끈 등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 장바구니 사용을 독려한다는 취지다. 2019.12.31.
[email protected]
"캐셔조차 종량제봉투나 장바구니를 살거냐고 물어봤을 뿐, 포장할 때 테이프와 끈을 이용할 수 없다고 설명해주질 않더라고요."
지난 20일 오후 3시께 홈플러스 합정점. 장을 보고 나온 뒤 자율포장대에서 노끈과 테이프가 비치돼 있지 않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선 투덜대던 시민들이 여럿 있었다.
대형마트 3사(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의 자율포장대에서 상자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노끈이 사라진 지 20일이 지났지만, 정부 정책을 알지 못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많았다.
마트 수레에 물건을 가득 싣고 온 박경권(75)씨는 "테이프랑 끈이 없어진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서는 바로 없앴다"면서 "우리 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잘 알 수 있도록 홍보를 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했다. 자율포장대 옆 상자 보관대에서 빳빳하고 넓은 상자 2개를 집어 든 박씨는 사온 물건들을 상자에 넣은 뒤 하나씩 밖으로 옮겼다. 한 승용차에서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박씨와 함께 상자를 들어 차에 싣고서야 떠날수 있었다.
테이프와 끈이 사라졌지만 자율포장대 앞에 어쩌다 한 번씩 테이프나 끈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오후 한때 서울 중구 롯데마트 자율포장대에선 테이프를 뜯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모(75)씨와 김모(71)씨 부부는 사과와 배 등을 상자에 가득 담고서는 테이프로 상자 주변을 칭칭 감는 소리였다. 이 부부는 "오늘 예상치 않게 물건을 많이 사게 돼 어쩔 수 없이 상자를 이용하게 됐다"면서도 "테이프는 한 번 사면 또 쓸 수 있으니까 사는 김에 더 샀다"라고 말했다.
이 부부 옆에서 물건을 담던 중국인 관광객들도 미리 사 온 테이프로 상자를 칭칭 감고 있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테이프를 공동구매해 나누어 썼다. 다른 관광객들은 빈 여행 가방에 물건들을 담아가기도 했다. 한때 이들이 펼친 여행 가방 서너개가 자율포장대 근처를 둘러싸면서 다른 이용객들의 진입이 어려웠다.
테이프로 상자를 포장하는 이들 머리 위 천장엔 '테이프와 끈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한글·영어·중국어·일본어 안내문이 걸려있었다. 이 외에도 자율포장대 곳곳에 테이프 사용 금지 안내문과 장바구니 판매 안내문이 각각 붙여져 있었다.
"뭐가 더 튼튼하지?" 테이프와 끈 없이도 튼튼한 상자를 찾는 시민들도 있었다. 지난 20일 이마트 용산점 자율포장대 앞에서 최미혜(39)씨는 한참 상자를 고르고 있었다. 최씨는 "테이프나 끈 사용이 불가능하니까 좀 더 튼튼한 상자를 찾고 있다"면서 "그래도 테이프나 끈이 없으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최씨가 만든 상자 안에는 스파게티 소스가 든 유리병과 각종 양념병들이 들어 있었다.
[서울=뉴시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20일 설 명절을 앞두고 세종시 조치원읍 세종전통시장을 방문해 장바구니를 이용한 장보기 활성화를 위해 시민들에게 장바구니를 나눠주고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제공) 2020.01.20. [email protected]
지난 20일 이마트 용산점에서 박현덕(56)씨는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와 끈이 없어진 것을 처음 보고는 당황해했다. 박씨는 "테이프와 끈을 쓰지 못한다면 알려주는 게 맞지 않나"라면서 "제대로 좀 알려주거나 오래 홍보를 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언급했다.
빨간색 접이식 개인 수레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김용자(74)씨는 "(테이프·끈 사용 금지) 홍보가 잘 안 된 것 같다. (테이프와 끈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여기 와서 알았다"라면서 "원래 개인 수레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 안 가지고 왔으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정진형(68)씨는 캐셔에게 "자율포장대에 테이프와 끈 어디 갔어요?"라 물었지만 "종량제 봉투나 장바구니를 사야 한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최씨는 "아니 테이프와 끈을 왜 갑자기 없앴냐"면서 "좀 더 홍보를 널리 해야 하지만, 계산할 때에도 테이프와 끈을 이용할 수 없다고 설명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마트에서 장바구니 판매와 홍보를 넘어 이용객들이 장바구니를 준비해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마트들이 장바구니를 직접 들고 오는 고객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장바구니를 직접 가져온 경우 할인 쿠폰을 주거나 스탬프를 찍어서 몇 개 이상 쌓이면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적절한 인센티브 방안을 마트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할 게 아니라 집에서 직접 가지고 올 수 있게 홍보를 해야 더 효과가 있다"면서 "장바구니 판매와 홍보, 인센티브 제공 등의 방안 등을 마련해 긴 호흡을 가지고 홍보와 캠페인을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